Page 293 - 한국 교회가 잘못 알고 있는_ 101가지 성경 이야기 1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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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타내는  자”로서  살아갈  것을  보여  주는  것이지,  그가  비전이  있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  아닙니다.  이를  현대적으로  읽어서는  곤란합니다.

                   뿐만  아니라,  오늘날  이  요셉을  비전의  사람으로  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는  한

               가지  질문을  더  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들이  말하는  비전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요셉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요셉이  ‘비전의  사람’이었다고

               할  때,  많은  사람들이  요셉이  바라고  꾸었던  그  꿈이  무엇이었는가의  종착점이
               “애굽의  총리가  되었다.”고  말한다는  점입니다.

                   과연  요셉이  비전의  사람이었고,  그의  비전은  애굽의  총리가  되는  것이었습니까?
               요셉이  꿈꾸는  자였다는  것을  비전의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지만,  그

               꿈이라는  것조차  이렇게  “세상에서  성공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더
               황당스러운  일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요셉을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요셉은  어려서  형제들에게  팔려  가는  큰  고통을  겪었다.  하지만  그는  그

                       고통을  이겨  냈는데,  그것은  장차  하나님께서  주실  비전을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그는  이  고통스런  시간들을  꿋꿋이  이겨  내고  결국에는  애굽의
                       총리라는  영광스러운  자리에까지  오르게  된  것이다.


                   즉,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에게  있어  요셉의  비전이라는  것은  결국  애굽  나라에
               총리가  되는  것입니다.  참  어이없는  대답이  아닙니까!  언제부터  그리스도인들의

               비전이  세속적  지위를  쟁취하는  것이  되었습니까!  그나마  신앙적  열정이었다고

               한다면  일말의  동감의  여지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오랫동안  요셉을  지탱했다고
               말하는  그  비전이,  세속  국가의  총리  따위라니요!

                   과연  세속의  지위가  요셉에게  중요한  것이었을까요?  창세기  45장과  50장에  나온

               두  번의  고백은  요셉이  자신의  위치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었는지를  정확하게  보여
               주는  말씀입니다.  요셉이  평생을  살아가면서  중요하게  생각한  것이  과연  “애굽의

               총리가  되는  것”이었는지,  아니면  다른  무엇이었는지는  이  말씀에  나타납니다.
               요셉은  왜  자신이  이곳으로  오게  되었으며,  왜  애굽의  총리가  되었는지를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창
                       45:5).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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