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05 - 한국 교회가 잘못 알고 있는_ 101가지 성경 이야기 1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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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이 그의 아버지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서 그의 두 형제에게 알리매 셈과
야벳이 옷을 가져다가 자기들의 어깨에 메고 뒷걸음쳐 들어가서 그들의 아버지의
하체를 덮었으며 그들이 얼굴을 돌이키고 그들의 아버지의 하체를 보지
아니하였더라 노아가 술이 깨어 그의 작은 아들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알고 이에
이르되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의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하고 또
이르되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하게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창 9:18~27).
창세기 9장에 나와 있는 노아의 행동은 일반적으로 “비난받아 마땅한 일”로
여겨져 왔습니다.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창 6:9)로 불렸던 노아가 술에 취해
실수한 것으로 읽는 것입니다. 비록 교회 역사 안에서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긴 하지만, 이 본문이 사실 매우 어려운 본문임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에서는
‘술’이라는 것 때문에 아무런 거부감이 없이 노아를 비난하는 데에 익숙합니다. 쉽게
말하자면, “술을 먹는다.”는 것이 한국 교회의 전통 내에서는 죄로 금기시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에 노아가 포도주를 먹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봐라! 이 의인이라 불린
사람조차도 술 앞에서는 이렇게 맥없는 모습을 보이지 않느냐?”라는 의도로
말하기에 매우 좋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 본연의 의미를 생각하기 전에 “우리의 도덕적 당위”를 먼저
집어넣어 읽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만약에 이렇게 말한다면 우리는 예수님도
비방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도 포도주를 드셨을 뿐만 아니라(팔레스타인의
생활양식에 기초해 보면 아주 자주 드셨을 것입니다), 심지어는 가나안 혼인 잔치에서는
포도주를 만드시기까지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악한 술의 ‘제조업자’가 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노아를 비방한 우리는 예수님도 동일한 제목으로 비방해야
할까요?
한국 사회에서 술에 대한 거부감은 굉장하지만, 서구 교회의 성도들은 대부분 다
술을 마십니다. 이런 현상들을 놓고 “한국 성도들만 경건하고, 술 먹는 서구 교회
성도들은 타락해서 지금 다 망하는 길로 가고 있다.”라고 이야기해도 괜찮은
것입니까? 이것은 분명 교만입니다. 만약 이렇게 말하려면 일단 제일 먼저 유대
나라 사람들부터 정죄하고, 예수님부터 정죄해야 합니다. 이는 사실 불가능한
논법입니다. 결국 우리가 이 본문을 얼마나 타당하게 대하느냐의 문제는 “술에 대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