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35 - 한국 교회가 잘못 알고 있는_ 101가지 성경 이야기 1 & 2
P. 335

그러면  사자가  블레셋이라고  생각하고  다시  이  수수께끼를  봅시다.


                          먹는  자에게서  먹는  것이  나왔다.

                   이것을  약간  이렇게  바꾸어  보겠습니다.


                          먹는  자에게서  먹을  것이  나왔다.


                   같은  말입니다.  먹는  자가  누구입니까?  사자입니다.  그런데  이  사자를

               블레셋이라고  한다면  또  다른  의미에서  블레셋은  포식자입니다.  즉,  블레셋은
               이스라엘을  “삼키는  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블레셋을  쳐부수어  그들을

               멸절시키려는  삼손에게  그의  사역의  초반부에  기이한  상징적  사건  하나를  주십니다.
               그것은  “먹는  자  곧  포식자로부터  먹을  거리가  나오는  것”입니다.  놀랍습니다!  원래

               포식자는  우리를  잡아먹는  자입니다.  이스라엘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블레셋은

               이스라엘을  잡아먹는  자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하나님은  사자  사건을  통해서
               삼손에게  “먹는  자를  통해  먹을  것이  공급된다!”는  점을  보여  주셨습니다.  이것은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암시가  아닐까요?


                   게다가  그  먹을  것이  ‘꿀’이라는  사실도  생각해  봅시다.  동물이  죽었는데  그
               사체에  벌이  집을  짓는  경우는  우리  문화에서는  거의  볼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아주  희한한  그런  경우가  생겼습니다.  팔레스타인  지역은  대단히  뜨겁고  건조하기
               때문에,  사체가  죽은  뒤  하루  만에  바싹  말라버리는  일이  종종  있다고  합니다.

               아마도  벌은  그렇게  바싹  마른  사자의  시체에다  집을  지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이
               삼키는  자,  사자,  블레셋을  치는  것을  통하여  나온  것이  왜  하필  꿀일까요?

                   꿀은  일반적으로  먹을  것들  중에서  가장  좋은  음식  중의  하나입니다.  하지만

               성경에서  꿀은  그  이상의  의미를  갖습니다.  이  꿀은  여러분들이  잘  알고  있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할  때의  그  꿀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축복의  땅을

               가리킵니다.  이  꿀은  세례  요한이  “메뚜기와  석청을  먹었다.”고  할  때의  그  꿀입니다.

               그가  석청을  먹은  이유는  광야에서  구약의  이  사건을  생각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  꿀은  성경에서  “주의  말씀이  송이꿀보다도  더  달다.”라고  할  때의  그  꿀입니다.

               신명기  8장  8절과  열왕기하  18장  32절은  우리에게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거하게  될  때  그  땅에서  꿀이  흐를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즉,  성경에서  꿀은

               “하나님의  은혜의  나라가  임할  때  그의  백성들이  먹게  될  것”을  나타냅니다.  그래서
               말씀은  종종  꿀에  비견됩니다.
   330   331   332   333   334   335   336   337   338   339   3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