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74 - 한국 교회가 잘못 알고 있는_ 101가지 성경 이야기 1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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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 수 있는 부분입니다(삶보다 신앙이 우선입니다). 우리는 이런 부분에서
종교적으로는 융성한 듯 보이나 실제 신앙 생활에 있어서는 매우 빈약한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저는 주일에 자격증 시험 치는 문제를 여전히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전적으로 성도의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
학교에 대한 우선순위도 마찬가지입니다. 청교도들이나 개혁교회의 성도들은
아이들의 신앙 교육을 대단히 중요하게 생각해서, 어떻게든 아이들이 자라면서 신앙
교육을 받을 수 있게 하는 데 대단한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네덜란드에서 온 한
교수님은 한국 교회에서 가장 의아한 부분이 “왜 신자가 자녀들을 불신학교에
보내는가?”하는 문제였다고 합니다. 참으로 신앙을 제대로 가르치려면 어릴 때부터
신앙으로 양육해야 하는 것인데, 신자의 자녀들은 하루에 열 시간이 넘는 시간을
학교에서 보내면서도, 정작 신앙을 제대로 가지고 가르치는 학교를 구경도 못한
채로 인생의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한국 교회는 안 믿는 아이들에게
신앙을 강요하는 미션스쿨에만 관심이 조금 있고, 그마저도 실제 대다수의
미션스쿨들은 서울대 들어가기 위한 입시학원화 되어 있으며, 그나마 부모들은
아이들을 좋은 대학에 보내는 데는 관심이 있어도, 신앙교육을 할 수 있는 학교를
만드는 데는 관심이 없습니다. 아이들이 거의 전부의 시간을 보내는 곳이
학교인데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이러한 문제들은 한국 교회가 장차 풀어야 할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학개서 1장 4절의 말씀은 방금 말씀드렸던 요지를 가지고 통렬하게
한국 교회에 쏟아부어야 할 말씀입니다. 학개서가 기록된 시점은 이스라엘이
포로에서 돌아와 다시금 성전을 재건하고 새롭게 하나님의 나라로서 발돋움하려
하는 시기입니다. 그런데 포로에서 돌아온 사람들은 성전을 재건하는 일에 열심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소위, 자신의 삶에만 관심을 쏟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 곧
자신들의 정체성, 하나님이 함께 계셔야만 하는 이스라엘의 독특한 특성을 회복하는
데에 관심이 별로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학개서에서 쏟아져 나오는 말씀은
이러한 “하나님 중심적이지 않은 삶, 개인적인 안락만을 구하는 삶”에 대한 폭탄과
같은 메시지입니다.
이 성전이 황폐하였거늘 너희가 이 때에 판벽한 집에 거주하는 옳으
냐(학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