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95 - 한국 교회가 잘못 알고 있는_ 101가지 성경 이야기 1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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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성전에 모여든 외국 사람들 곧, 중국 사람, 영국 사람, 일본 사람, 터키
사람, 필리핀 사람, 말레이시아 사람들이, 성전에 모인 유대인들을 통해, 각각 자기가
살던 지역 말, 그러니까 중국어, 영어, 일본어, 필리핀어 등으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하는 것을 들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행전 2장의 방언은 말할 것도 없이
외국어입니다. 오늘날 방언을 지지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이것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면 문제가 되는 것은 “고린도전서 14장의 방언이 이 사도행전의 방언과
다르냐?”는 점입니다. 우리는 일단 이렇게 질문할 수 있습니다. “만약 사도행전에
나타난 방언과 고린도전서의 방언이 다른 것이었다면 왜 바울이 그에 대해 아무런
언질도 주지 않을까?”
우리가 성경 시대를 산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이 알고 있는 유명한 방언
사건이 얼마 전에 예루살렘에서 오순절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우리
교회에 편지를 씁니다. 그런데 그가 말하는 방언은 그때 사도행전의 방언이 아니고
또 다른 종류의 방언입니다. 만약 그렇다면 왜 “이 방언은 사도행전의 방언과 다른
종류의 방언이다.”라는 언급이 하나도 없는 것일까요?
일단 단어 자체는 사도행전의 ‘방언’이라는 말과 고린도전서의 ‘방언’이라는 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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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습니다. 그리고 본문의 정황을 살펴보면 그 방언들이 나타나는 양상도 같습니다.
뿐만 아니라 바울이 이 방언을 다루는 방식도 사도행전의 방언과 같습니다. 그런데
무슨 근거로 고린도전서의 방언이 사도행전의 방언과 다르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사도행전의 방언과 고린도전서의 방언이 ‘다른 방언’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사실 전혀 객관적이지 않습니다. 객관적으로 성경에서 출발해 보더라도 이
고린도전서의 방언은 사도행전의 방언과 같은 것입니다. 만약 다른 것이라면
‘방언’이라는 말 대신 다른 표현을 썼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왜 우리가 자꾸
고린도전서의 방언은 다른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우리가 지금 주변에서
보는 방언이 외국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자꾸 이것을 고린도전서의
2) 둘 다 혀(tongue), 언어(language), 말(speech)을 의미하는 헬라어 단어 ‘글롯사’이다.
바우어 사전에서도 이 단어에 대해 “고전 14:21에 인용되어 있는 사 28:11이하의
인용문은(엔 헤테로글롯소이스: 다른 방언하는 자로) 본래 외국어를 뜻하는
말이다.”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