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98 - 한국 교회가 잘못 알고 있는_ 101가지 성경 이야기 1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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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않습니다. 이것은 다른 종교개혁자들에게서도
마찬가지 양상입니다. 왜 그럴까요?
이러한 내용은 초대 교회의 신학을 집대성했다고 평가되는 어거스틴에게서도
마찬가지로 발견되는 현상입니다. 변종길 교수가 쓴 『성령과 구속사』라는 책에 보면,
어거스틴이 방언을 어떻게 이해했는지를 설명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칼빈도 그렇지만, 어거스틴 역시 ‘방언’을 인간의 언어로 이해하지 이상한
말로 이해하지 않는다. 어거스틴은 ‘방언’을 “모든 민족의 방언으로 말하는
것”이라고 표현했는데, 이것은 방언이라는 것 자체를 그가 여러 민족들에
의해 실제로 말해진 자연적인 인간 언어로 이해했음을 보여 준다.
4)
변 교수는 이 말에 덧붙여 “방언으로 말하는 현상이 지금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에게는 더 이상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은 어거스틴에게 있어서 자명하다.”라고
말합니다. 즉, 교회 역사 안에서 칼빈이든 어거스틴이든, 우리가 잘 아는 대다수의
우리의 신앙 선배들은 방언을 외국어로 이해했지 알아들을 수 없는 이상한 천상의
말로 이해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즉, 우리가 20세기, 21세기의 한국에서 살고
있어서 방언이 친숙한지 몰라도 17세기가 되기 전까지는 교회들에 방언 자체가
거의 없었다는 것, 그리고 당연히 방언이 “알아들을 수 없는 이상한 말”이라는
개념은 거의 없었다는 것이 역사적 사실입니다. 이러한 이상한 말을 지껄이는 것은
이교도들에게서는 볼 수 있었는지 몰라도, 개신교회 안에서 이런 현상은 전혀
보편적인 것이 아니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교회사의 뿌리를 더 더듬어 올라가 보아도 사실은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들이
이름을 들으면 알만한 교회사적 위인들 중에 방언을 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가 초대 교회 역사 속에서 방언을 발견하니까, 은연중에 이렇게
생각합니다. ‘초대 교회 때는 방언이 많았겠지…….’
하지만 초대 교회의 모든 사료들 중 사도들의 시대와 사도들을 이은 속사도들의
시대, 조금 더 나아가 교부들과 감독들이 형성되는 3세기까지의 모든 사료들을 다
하는 것을 들을 때, 놀라움을 금치 못하므로 다른 은사보다 더 화려한 전시 효과를
나타내게 되어 그들이 지나치게 이 방언의 은사에 관심을 집중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아래에 바로 “그것은 외국어를 의미하고 있다.”라고 쓰고 있다.
4) 변종길, 『성령과 구속사』(서울: 개혁주의 신행협회, 1997), p. 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