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11 - 한국 교회가 잘못 알고 있는_ 101가지 성경 이야기 1 & 2
P. 511

90  신유(병  고침)에  관하여  1



                                 성경적  신유와  오늘날  신유와의  차이점



                   오늘날  한국  기독교회  안에는  성령에  대한  혼잡한  이해들이  있습니다.  성령의

               특별한  역사라고  여겨지고  있는  것  중에  병  고침,  즉  신유라는  것도  있고,  축사나

               방언  같은  것도  있습니다.  성령에  대한  이해의  새로운  국면으로서  이런  성령의
               역사라고  생각되는  여러  가지  현상들에  대해  주목하고  있는  것은  전  세계  교회

               보편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현상입니다.  특별히  한국  교회들은  이런  부분들에  더
               민감한  듯  합니다.  특히나  순복음  교회들과  같은  곳에서는  거의  이런  양상들이

               신앙의  핵심인  것처럼,  혹은  신자들의  삶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런  내용에  대해  그저  받아들이면  되는  것일까요?  정말  이런

               내용들  곧,  방언을  하고,  병  고침을  받고,  귀신을  쫓아내는  종류의  일들이  모두
               성령의  역사로  일어나는  일일까요?  이  장  전체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은  바로  이런
               것들입니다.


                   과연  성경적으로  옳은  것인지에  관하여  우리는  정확한  이해를  가져야  합니다.
               만약  이것이  성경  말씀의  지지를  얻지  못한다면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라

               할지라도,  그리고  내가  직접  경험한  일이라고  해도  믿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오감은  정확한  판단을  하지  못할  때도  많고,  세상에는  우리가  ‘신앙’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이  신앙이  아니라  다른  어떤  ‘현상’인  경우도  많기  때문입니다.  만약

               내가  병이  나은  것을  경험했기  때문에  성경에  나타나는  신유라고  말하려고  한다면,
               그  사람은  왜  그러한  병  고침의  기적이  로마  가톨릭교회에서도,  불교에서도,

               이슬람교에서도,              심지어는          인디언의          주술들과         아프리카          무속신앙에서도
               나타나는지를  설명해야  합니다.  기독교인인  내가  기도를  통해  병이  나은  것이

               무조건  성령의  역사라고  한다면,  옆집에  사는  아주머니의  딸이  무당의  내림굿을

               받고  나서  병이  나은  것은  무엇으로  설명해야  합니까?  그것도  성령의  역사입니까?
               아니면  그저  쉽게  악령의  역사라고  말할  것입니까?  그러면  왜  성령과  악령의  역사가
               똑같은  방식으로(병  고침으로)  나타납니까?  이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습니까?

                   저는  주위에서  “자기가  경험했기  때문에  무조건  하나님의  역사다.”라고  하는
   506   507   508   509   510   511   512   513   514   515   5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