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16 - 한국 교회가 잘못 알고 있는_ 101가지 성경 이야기 1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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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사로처럼  완전히  죽어  썩고  있는  상황에서  다시  살아나는  종류의  기적은  역사가
               시작된  후로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신유는  성경의  신유와  같지
               않습니다.



                   다섯째,  예수님이나  사도들이  병을  고칠  때는  황홀경이  동반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면  알  수  있지만,  예수님이나  사도들이  병을  고칠  때는  요란한

               것이  없습니다.  쉬운  예를  들면  예수님이  손을  얹으시고  “에바다”라고  말씀하시거나,
               “나사로야  나오라”,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정도가  전부입니다.  여기에는  치료를

               받는  대상자의  격렬한  영적  황홀경  상태가  동반되지  않습니다.  그냥  가만히  앉아서
               주님의  말씀을  듣고도  그대로  병이  나았습니다.  이것이  증명하는  것은  “어떤  감정적
               도구나  주술적  도구가  개입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신유  집회  등에서  병이  낫는  경우는  많은  경우  치료를  받는
               사람의  열광적인  기도나  찬양  중에  혹은  영적  황홀경  속에서  병  고침이  나타납니다.

               즉,  정상적이고  평상적인  감정  상태,  곧  다른  어떤  감정적이거나  종교적인  아무런
               개입이  없는  상황에서  일어나는  것은  적고,  대부분의  경우  그  사람이  비정상적인

               어떤  영적  체험  속에서  병이  낫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의심의  소지가  있습니다.
               의심의  소지란,  과연  그것이  하나님이  낫게  하신  것인지  아니면  영적  황홀경  때문에

               나은  것인지  알  수  없다는  말입니다.  영적  황홀경  상태로  나은  것이라면  다른

               종교에서도  이런  일이  동반되는  것이  이해가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  때문이  아니라,
               “사람이  본성적으로  가지고  있는  어떤  영적인  힘”  때문에  나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역시  이런  점에서도  예수님과  사도들의  그것과  오늘날의  병  고침은  다른  것입니다.



                   여섯째,  이방  종교에서  나타날  수  없는  성경의  신유와  오늘날의  신유는  다릅니다



                   서론에서  말씀  드린대로,  만약  이것이  “성령의  역사”라면,  다른  종교에서는
               이것이  나타나지  않아야  합니다.  하지만  신유는  거의  모든  종교에서  나타나는

               공통된  현상입니다(앞에서  다룬  방언도  거의  모든  종교에서  나타나는  공통된  현상입니다).
               모든  종교에서  이런  현상이  다  나타난다면,  그것은  “성령의  역사”라기보다는, “종교적

               현상”이라  하는  것이  더  옳습니다.  쉽게  말하자면  “종교적  황홀경이  동반되면  어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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