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15 - 한국 교회가 잘못 알고 있는_ 101가지 성경 이야기 1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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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우리가 볼 때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는 것뿐이지, 과학적으로, 의학적으로,
상식적으로 완전히 아예 말이 안 되는 불가능은 아닙니다. 정말 가끔이지만 낫는
사람들이 있는 경우입니다.
그런데 “날 때부터” 그런 사람들은 이것과 차원이 다릅니다. 이해가 쉽게 하기
위해서 “날 때부터 앉은뱅이”를 생각해 보십시다. 후에 앉은뱅이가 된 사람은 나을
수도 있습니다만, 날 때부터 앉은뱅이인 사람은 태어날 때 아예 다리가 붙어 나온
사람입니다. 1퍼센트의 가능성도 없는 사람입니다. 아예 불가능한 사람입니다. “날
때부터 소경인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이나 사도들은 이런 사람들을 고치셨습니다. 말 그대로 완전히 불가능한,
확률 제로의 사람들을 낫게 하신 것입니다. 오늘날 신유 한다는 사람들이 이런
사람을 낫게 한 사례는 없습니다. 오늘날의 신유 은사자들과 예수님이나 사도들의
기적이 어떻게 같을 수 있습니까?
넷째, 오늘날 신유를 한다는 사람은 죽은 사람을 살리지 못합니다
“고칠 수 없는 질병”의 극단에 “죽은 사람”이 있습니다. 절대 고칠 수 없는
질병의 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부분 역시 매우 중요한 점입니다. 오늘날 신유를
하는 사람들은 죽은 사람은 살리지 못합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예수님이나
사도들은 ‘병 고침’만 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죽은 사람도 살렸습니다. 만약
오늘날의 신유를 한다는 사람들이 그 시대와 같은 기적을 행하는 것이라면,
오늘날의 신유의 은사를 가진 사람들은 왜 죽은 사람은 살리지 못합니까? “에이!
죽은 사람을 어떻게 살려요!”
맞습니다. 죽은 사람을 못 살리니까 예수님이나 사도들의 기적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사람들이 행하는 것은 “성경의 그 기적”이 아닙니다. 성경에
예수님이 폐병 환자는 조금 쉽게 일으키시고, 죽은 사람은 며칠 금식하면서
살리셨습니까? 전혀 아닙니다. 예수님은 질병이나 죽은 자나 똑같았습니다. 죽은
자를 살린다고 더 힘을 쓰신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오늘날 죽은 사람을 살리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 경우는 없습니다. 아니 아예 단 한 번도 이런 일은 일어난
적이 없습니다. 혹여 이 글을 읽으시는 분 중에 그런 예를 들은 적이 있는 분도
있을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그런 경우는 “세상에 이런 일이” 같은 데서 나오는
것처럼 가사 상태에 빠졌다가 살아나는 경우입니다. 실제로 예수님이 살리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