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14 - 한국 교회가 잘못 알고 있는_ 101가지 성경 이야기 1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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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예수님이나 사도들은 병자를 고치려고 시도했다가 실패한 적이 없습니다
저는 이 점을 사람들이 왜 못 알아채는지 참 궁금합니다. 성경을 보십시오.
예수님이나 사도들은 병자를 고치려고 기도하면 반드시 다 고치셨습니다. 실패한
경우는 없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의 병 고친다는 사람들을 보십시오. 확률 싸움입니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낫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아무리 많아 봤자 10퍼센트도
될까 말까입니다. 만약 어떤 신유 은사를 받았다는 사람이 정말 10퍼센트를
고친다면, 그 사람은 어마어마하게 유명해질 것입니다. 저도 어렸을 때 어머니께서
중병을 앓으셔서 그런 기도원을 많이 다닌 경험이 있습니다. 집회에 천 명이 오면
한두 명도 낫기 어려운 것이 신유와 관련된 오늘날의 현실입니다. 만약 10퍼센트를
고친다면 문턱이 남아나지 않을 정도로 사람들이 들끓을 것입니다.
결국 소수의 나은 사람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그냥 낫기를 기대하고 있지만,
‘나으면 정말 다행이다.’라고 생각하지, “반드시 나을 것”이라고 바랄 수도 없고, 또
실제로 반드시 낫지도 않습니다. 여기에서 성경과 명백한 차이가 있습니다.
예수님이나 사도들은 병자를 고치려고 시도하시거나 기도하실 때 반드시 나았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신유를 한다는 사람들은 반드시 낫지 않습니다. 가끔 낫기도 하지만,
안 낫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 낫지 않으면 기도받는 사람 믿음 탓을 하곤 합니다.
당신이 믿음이 부족하니까 안 낫는거다. 이런 억지가 어디 있습니까? 병을 고치려
함에도 불구하고 병이 낫지 않는 경우가 더 많은 오늘날의 신유를 어떻게 성경에
나와 있는 그런 기적들과 동일시할 수 있습니까? 전혀 같지 않습니다.
셋째, 오늘날 소위 병 고친다는 사람들은 완전히 불가능한 병은 못 고칩니다
사람들이 자주 놓치는 것이지만, 실은 이것도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주님이 고친 사람들에 대한 언급에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 “날 때부터 앉은뱅이된
사람”과 같은 표현들이 자주 등장합니다. 왜 이런 사람이 중요한 사람일까요?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이 “날 때부터”입니다. 성경이 그냥 소경, 앉은뱅이라고 하지
않고 “날 때부터”를 붙인 이유는 낫는다는 것이 전혀 불가능한 질환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건장했던 사람이 불치병에 걸린다거나, 사고로 불구가 되었을 때는
종교와 관련 없는 영역에서도 아주 기적적인 일이 간혹 일어납니다. 낫기도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주위에서 “정말 불가능한 병인데 하나님이 낫게 하셨다.”라고 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