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62 - 한국 교회가 잘못 알고 있는_ 101가지 성경 이야기 1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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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을  다시  잘  보십시오.  성경은  우리에게  “뜨거워지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차든지  뜨겁든지  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계  3:15).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16절).



                   이  말씀  그대로  따르려면  “차가와져도”  괜찮은  것입니다.  왜  둘  중  “뜨거운  것”만
               취합니까?  왜  성경  말씀을  곧이곧대로  받지  않고,  자신의  견해에  맞는  것만을  취사

               선택합니까?  이  본문의  말씀은  “미지근하지  말라.”는  데에  주안점이  있지,

               “뜨거워져라”에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  3장  15~16절에서도,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15절),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토하여

               내겠다.”(16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이  말씀의  경고에  답하려면,
               뜨거워져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뜨거워지거나,  차가워지거나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차가워져도  됩니다.  이것이  본문을  정확하게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왜  이  말씀을  가지고  “뜨겁지  않은  신앙”을  공격하는  데만  사용되었습니까?
               선제된  목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미지근한  사람을  열정적으로  만들고자  하는

               선제된  목적이  있었기  때문에  “차가와져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뜨거워져야만  되는
               것이죠.

                   이  말씀은  “신앙의  열정”에  관하여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책망  받은

               것은  “너는  왜  뜨거운  열정이  없느냐!”가  아니라,  그들이  이도  저도  아닌  자세를
               취했기  때문에  책망을  받은  것입니다.  이후의  말씀을  보십시오.  라오디게아  교인들은

               자신이  부자라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가난하고  가련한  자라고  책망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신앙의  열정과  관련된  책망이  아닙니다.  우리는  본문을  읽을  때  편견을
               벗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향기(고후  2장)


                   두  번째로  생각해  볼  말씀이  고린도후서  2장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이  역시  한

               편의  내용만  취하고  다른  편의  내용은  취하지  않는  예입니다.  이  말씀을  근거로

               해서  요즈음에는  “너는  그리스도의  향기라.”라는  복음송도  많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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