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3 - 한국 교회가 잘못 알고 있는_ 101가지 성경 이야기 1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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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은 우리가 문을 열기 때문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악을 선택하고, 죄를 행할 뿐입니다. 우리가 구원받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전적으로 우리의 마음을 여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 3장을 이렇게 해석하는 것은 회심의 주권에 대해 중대한
오류를 범하게 만들거나,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 사람의 주권을 높이는
큰 문제에 부딪히게끔 만들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본문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앞에서 말한 이런 이유들은 우리를 좀 더 문맥에 주의를 기울이게 만듭니다. 이
구절은 어떤 배경하에서 쓰였습니까? 저는 이해를 돕기 위해서 일부러 20절만 쓰지
않고, 19절을 함께 썼습니다. 20절의 바로 앞 절인 19절은 이 구절이 ‘믿지 않는 자가
처음으로 주님을 영접하는’ 배경이 아니라, 믿는 자가 범죄한 상황에서 회개를
1)
요청하는 배경이라는 것을 알게 해 줍니다. 즉 이 구절은 주님을 영접하는 자를
대상으로 말하고 있는 본문이 아니라, 교회의 성도들에게 말하고 있는 본문인
것입니다(물론 당연히 이 글의 대상자도 불신자가 아니라 ‘라오디게아 교회 ’입니다).
14절부터 라오디게아 교회에 대한 말씀이 시작됩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15절).
본문은 라오디게아 교회의 죄와 실수에 대해 말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그들은 차지도 뜨겁지도 않았기 때문에 주님으로부터 책망을 듣고 있습니다. 이어서
17~18절에서는 라오디게아 교회가 어떤 악에 처해 있는지를 말합니다. 그들은
실제로는 “곤고하고, 가련하고, 가난하고, 눈 멀고, 벌거벗었”으나,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17절) 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문제가
많은 교회였는데, 자신들 스스로는 괜찮다고 여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은 그들에게 권합니다.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18절).
1) “요한계시록 3장 20절은 종종 복음 전도의 본문으로 이해되나 원래 문맥에서
주님에 대한 의존을 고백하고 그와 교제를 회복할 필요성이 있는 자만한 신자들에게
의도된 약속이다.” 번 포이쓰레스, 『요한계시록 맥잡기』 유상섭 역 (서울:
크리스챤출판사, 2002), p. 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