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8 - 구원이란 무엇인가-김세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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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들이  경험하는  제자도의  고난은  동시에  우리의  속사람이  곧  새로운  부활의  새  생명
                  이  날로  새로워지고  강건해  가는  과정입니다.  그  과정이  드디어  예수님이  다시  오심으로  말미
                  암아  우리를  더  이상  악과  고난과  죄의  시험에  허덕이지  아니하는  영광스러운  형상으로  완전
                  히  변화시킬  때  종결될  것입니다.  이것이  구원의  미래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소망입니
                  다.  이  소망이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는다고  했습니다(롬  5:5).  이것이  헛된  소망이  아니고  가
                  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구원의  첫  열매를  이미  받았다는  것은  언젠가는  구
                  원의  완성이  온다는  것을  보증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구원의  첫  열매는  성령의  임재함입니다.  더  나아가서  바울은  로마서  8장에서  우리가  궁극
                  적으로  구원의  완성을  받으리라는  것을  우리와  함께  하시는  성령으로  증명했습니다.  우리가
                  벌써  하나님을  ‘아바’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금  악과  고난에서  허덕이지만  하나님께
                  ‘아바’라고  하면서  기도함으로써  벌써부터  그의  힘을  빌어  쓸  수  있습니다.  아직  예수님이  오
                  시기  전에,  즉  구원이  완성되기  전부터  예수  그리스도가  분명히  오셔서  우리의  구원을  완성하
                  리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소망은  밑바탕이  없는,  근거
                  도  없이  공중에  붕  뜬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벌써  ‘아바’라고  부릅니다.  지혜가  없어  불안할  때  하나님께  ‘아바  아버지’라
                  고  기도하면  지혜를  얻고,  능력이  없어  두려울  때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며,  심지어
                  칠십  평생을  살다가  죄악의  세상에서  우리의  옛  아담적인  몸이  죽어  갈  때도  우리  몸을  하나
                  님  아버지께  맡기고  기도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구원의  첫  열매를  받은  자로서  구원의  완성
                  을  기다리는  그리스도인의  소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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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정과  지키심
                  지금까지  우리는  구원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구원이  왜  필요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어
                  떻게  하나님의  객관적  구원  사건이  일어났는가,  그  객관적인  구원  사건을  우리가  어떻게  믿음
                  으로  덕  입을  수  있는가,  덕  입은  구원이  어떻게  종말론적  구조를  가지고  있는가,  거기서  어
                  떻게  제자도의  윤리가  파생되는가,  그래서  오늘  우리가  사는  삶이  어떠한  삶이  되어야  하는
                  가,  우리가  바라는  소망은  어떠한  것인가  등입니다.  이제  이  모두를  하나님의  구원의  처음과
                  끝의  관점(perspective)으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예정을  이해하는  데는  시간  개념이  중요하다
                  예정은  태초를  논(論)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구원  문제를  시간  순으로  본다면  거기서
                  부터  시작해야  할  텐데  왜  이처럼  구원에  관한  이야기  끝에  놓아야  합니까?  바로  여기에  중
                  요성이  있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논할  때  태초라는  시점에서  시작할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구원  사건부터  논해야  합니다.  예정을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할  때  예정  교리의  그  오묘함이
                  완전히  도치되어  오히려  우리를  불안하게  하고  우리를  괴롭히는  교리로  다가올  수도  있습니
                  다.  사실  예정의  교리는  우리에게  위안을  갖게  합니다.  예정의  교리를  성경적으로  이해할  때
                  이  교리의  진정한  의미가  드러나고  그것이  우리에게  진정으로  위안을  가져다  줍니다.
                  예정의  교리를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올바른  관점을  가지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
                  다.  예정  교리는  ‘역사의  중심’에서부터  논하기  시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  안에  하나님의  구원이  일어났다고  고백하며  그  안에  하나님의  계시
                  가  완전히  일어났다고  믿습니다.  하나님의  오묘한  진리가  그리스도  안에  계시되었으므로  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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