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6 - 구원이란 무엇인가-김세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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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을  좀더  정확히  표현한  것이  5장  21절입니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는  자(예수)
                  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여기서  ‘죄’란  헬라어를  문자적으로  번역한  것인데,  이  단어는  히브리적  어원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그  하나는  죄라는  뜻이고,  다른  하나는  죄
                  에  대한  속죄의  제사라는  뜻입니다.  고린도후서  본문에서는  이  두  가지를  한꺼번에  표현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본문은  죄  없는  예수에게  우리의  죄를  담당하도록  하고  우리의  죄에  대한
                  속죄의  제사가  되게  했으며,  그것은  그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의인
                  들이  되도록  하기  위함이라는  뜻을  지닙니다.  이것이  바울의  인식  변화의  내용입니다.
                  유대인  바울이  예수를  메시아로  고백하게  된  이유
                  우리가  원래  제기한  문제(즉  왜  유대인들은  예수를  메시아가  아니라고  하고,  그리스도인들은
                  왜  예수를  메시아라고  하는가?)는  유대  신학자  바울과  그리스도의  사도가  된  바울  사이에서
                  가장  절실하게  나타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가장  깊은  신학으로,  다시
                  말하면  구약에  대한  가장  깊은  해석으로  혹은  구약에  대한  가장  깊은  해석으로  가장  널리  온
                  세상에  선포한  사람이  바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제기하는  이  문제가  바울에게서  가장
                  첨예하게  나타나며,  이  본문에서  가장  예리하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  본문에서  자기가  다메섹  도상으로  그리스도인들을  붙잡으러  갈  때까지  유대  신학자
                  로서  가지고  있던  메시아  사상,  즉  유대교적  메시아  사상을  육신적  관점에서의  메시아  사상이
                  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제  그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새로운  메시아  사상을  갖게  되었음을  말
                  합니다.  그것에  의하면  메시아(그리스도)는  우리  모두를  위해  대속의  죽음을  담당하신  분입니
                  다(고후  5:14,  21).  바울은  “그리스도가  우리  모두를  위하여  죽고  부활했다”는  것을  모든  사도
                  들의  공통된  복음일  뿐  아니라,  구약의  예언  성취라고  확신합니다(고전  15:3–5,  12).  다시  말
                  해  예수의  메시아적  행위는  우리를  위하여  죽고  부활한  것이며,  이것이  메시아  됨의  내용이고
                  메시아적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바울이  다메섹  도상의  계시를  통해  새롭게  얻은
                  깨달음입니다.  그  이전까지  그는  시내산의  한시적  계시에  의거한  메시아  사상을  가지고  있었
                  는데,  이  다메섹  도상에서의  새  계시에  비추어  보았더니  육신적인  메시아  사상에  불과함을  깨
                  달은  것입니다.
                  바울의  진술을  계속  들어  봅시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아무  사람도  육체대로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체대로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이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  5:16–17).
                  이  바울의  고백을  쉽게  풀어  이야기하면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습니다.  “내가  그때  육신적인
                  메시아  사상을  가지고  예수를  평가했기  때문에  그가  메시아  됨을  인정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예수를  저주하고  그를  메시아라고  선포하는  자들을  핍박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
                  는  더  이상  그렇지  않다.  그렇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대속하신  예수님의
                  메시아  사건,  곧  구원  사건에  의거하여  예수에  대한  나의  저주의  죄와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한
                  죄를  다  용서해  주시고  나를  새롭게  창조하신  것이다.  그래서  내가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이
                  다.  그러므로  옛것은  다  지나가  버리고,  모든  것이  새롭게  되었다.”
                  이것이  무슨  말입니까?  옛  유행가의  가사처럼  “과거를  묻지  말라,”  또는  물어  봤자  아무  소용
                  없다는  말을  하려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바울의  논지는  이것입니다.  “내가  다메섹  도
                  상에서의  인식  변화로,  그리스도에  대한  올바른  인식으로  그  구원의  덕을  입어서  완전히  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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