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 - 부산대첩 소식지(창간호 vol.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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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부산대첩인가
발 장군과 동래부사 송상현에 대한 기념으로 쏠려 있다. 사실 록』, 『이순신 장군』, 『임진왜란』, 『리순신 장군 이야기』, 『임진조국
임진왜란 당시 모든 부분에서 열세를 면치못한 조선 군사들이 전쟁』 등을 남겼는데, 임진왜란 및 이순신 관련 작품의 결정판
압도적인 화력으로 불시에 침략해 온 왜군과 싸우다 장렬하게 은 역시 『임진조국전쟁』이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임진왜란 초
최후를 마친 그 때의 전황과 그들의 희생정신을 기리고 널리 알 기 부산에서의 전투를 아주 상세하게 형상화하고 있다. <싸우
리는 일은 후세대들을 위해서도 매우 긴요하다. 더불어 부산대 는 부산성>과 <싸우는 동래성> 두 장을 할애하고 있는데, 이 중
첩 당시 이순신 장군이 이끌었던 군사들이 부산에 정박해 있 <싸우는 부산성>에서는 다음과 같은 장면이 소개되고 있다.
는 왜선을 대파한 일도 연구되고 전승되어야 할 중요한 역사적 “성내가 벌컥 뒤집히다시피 되었다. 집속에 꾹 틀어박혀 있던
사실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어느 전쟁이든 징발되어온 군사들 아녀자와 늙은이들까지 모두 밖으로 들끓어나와서 뻔질나게
이 주가 되어 전쟁을 치르긴 하지만 임진왜란의 경우 의병이나 성 위로 끓는 물을 나르고 불꾸러미를 나르고 돌을 나르고 매
승병은 물론 일반 백성들이 합세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이러한 운재를 나르고 나중에는 똥 오줌까지 퍼 날랐다.”
상황을 고려한다면, 우리가 임진왜란이라는 역사적 상흔을 통 역사소설이라는 점에서, 묘사된 위 장면을 사실 그대로 수용
해 건전한 시민정신을 함양하고 위기상황에서의 공동체 정신 할 것인가 하는 부분은 분명히 다시 짚어보아야 할 것이다. 그
을 되찾기 위해서는 당시 영웅적으로 전쟁을 이끌었던 훌륭한 러나 포르투갈 선교사였던 루이스 프로이스가 쓴 『일본사』 내
인물들 못지않게 그늘진 곳에서 묵묵히 전쟁을 수행했던 이들 용 중에도 나왔듯이 임란 당시 부산진성에는 약 300명 정도의
에 대한 재평가도 중요하다. 주민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부산진성이 함락되
그런데 문제는 임란 당시 부산지역에서 함께 싸웠을 일반 백 기 전 이곳에 살던 주민들이 왜적과 대항해서 위의 장면과 같
성들에 대한 기록이 공적 기록에서는 찾기가 힘들다는 점이다. 은 싸움을 전개했을 개연성은 충분히 있다. 어떠한 군사적 준비
전쟁에 대한 기록 다수가 군사들을 중심으로 기록될 수밖에 나 훈련도 없이 최전선에서 함께 싸웠을 이름없는 아녀자와 노
없었을 것이며, 특히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에서 백성들의 평범 인들의 기록을 찾아내는 일은 임진왜란 당시 무수한 희생을 치
하지 않았을 전쟁일상까지 다루기에는 한계가 있었을 것이다. 룬 민초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며 그들이 있었기에 지금 우
그렇기에 사라지지 않고 남아 문학작품으로 후대에까지 전해 리가 존재하고 있다는 당연한 사실들을 각인시키는 매우 중요
진 임란기록은 무엇보다 소중하다. 한 역사적 인식의 계기가 될 것이다.
임진왜란과 이순신을 역사적 소재로 삼아 문학적으로 형상 이런 차원에서 부산대첩기념사업회는 이순신 장군의 정신
화한 작품들은 많다. 대표적인 몇 작품들을 살펴보면 단채 신 을 온전히 기리고 확산시키기 위한 기념사업도 필요하지만, 부
채호의 『이순신전』으로부터 시작해서, 이광수의 『이순신』, 박종 산 전역에 흩어져 있을 민초 중심의 임란 흔적들을 제대로 복
화의 『임진왜란』, 김훈의 『칼의 노래』, 조두진의 『도모유키』, 김 원하는 사업을 병행하는 일에 대해서도 관심을 두어야 할 것이
탁환의 『불멸의 이순신』 등 독자층을 상당히 확보한 대중적인 다. 진정한 시민정신이란 그것들의 뿌리가 되는, 오랜 세월 민초
작품들이다. 그런데 이들 작품들보다 더 빼어난 솜씨를 보여주 라 불리웠던 그들을 불러내고 기리는 일로부터 출발하는 것이
고 있는 작가가 있다. 그가 바로 박태원이다. 그는 『이충무공 행 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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