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4 - 부산대첩 소식지(창간호 vol.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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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해논단
■ 여해논단
부산시민의 날과 부산대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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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는 시민의 날이 있다. 한국 제2의 도 도 끝까지 전투를 지휘했고 장엄하게 순국할
시이자 해양수도인 우리 부산의 주인인 시민 때까지 '사즉생, 생즉사(죽고자 하면 살 것이
이 가져야 할 덕목으로 애향심, 공공심, 단결 요,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다) 정신'의 임진무
심, 창의력을 고취하고 긍지를 바로 세우기 위 퇴 군인정신과 나라에 충성하고 백성을 보살
해 제정한 것이 바로 10월 5일 시민의 날이다. 피는 애국 애민 정신을 보였다. 해전에서 승리
그런데 왜 하필 10월 5일을 시민의 날로 정했 할 때마다 그 전공을 부하들에게 돌리는 지극
는지 물어보면 아는 분들이 거의 없다. 약 38 한 부하사랑, 명과 조선의 연합사령관인 진 도
년 전 시민의 날을 정하기 위해 각계각층의 의 독을 감동하게 한 큰 도량과 배려심, 그리고 세
견을 수렴하고 공청회 등을 거친 5개 안이 있 계 최초의 철갑선인 거북선을 만들어 왜군의
었다. 간담을 서늘케 한 창의력, 모든 일에 공과 사
서정의 그것은 송상현 동래부사 순국일인 5월 25일, 를 분명히 한 선공후사의 깨끗한 공직자상, 부
이순신 장군 부산포해전 승전일인 10월 5일, 부 정부패라고는 모르는 청렴의 표상 등 그야말
대한적십자사 부산회장 산항 개항일인 2월 27일, 부산시민헌장 제정일 로 이순신 장군께서는 우리 민족의 진정한 영
부산대첩기념사업회 고문 인 8월 1일, 부산직할시 승격일인 1월 1일이었는 웅이자 참다운 지도자가 아닐 수 없다.
데 문화위원회의에서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께 1907년 러·일 해전의 승자인 일본의 도오고
서 왜군 대 선단을 격파한 부산포해전 승전일 헤이하찌로 제독은 전승 리셉션에서 각국의
인 10월 5일을 부산시민의 날로 결정하여 1980 외신기자들이 그를 영국의 넬슨 제독, 조선의
년 9월 10일 확정, 공포했다. 이처럼 부산시민의 이순신 장군과 비교하면서 칭송의 덕담을 하
날은 민족의 영웅 이순신 장군의 투철한 충성 자 넬슨 제독과 자기를 비교하는 것은 이해할
심과 애국 애민의 정신은 물론 거북선을 만드 수 있지만 조선의 이순신 장군과 자기를 비교
신 창의력과 남을 배려하는 도량 등 높은 기상 하는 것은 천부당만부당하다고 하면서 자기는
과 정기가 서려 있다. 이순신 장군의 발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말한
이순신 장군은 높은 충성심은 물론 백성들 일화는 너무나도 유명하다.
에 대한 투철한 애민정신으로 전쟁 중에는 백 우리 부산의 새로운 도약을 위한 낙동강의
성들을 군영으로 피난토록 하여 안전하게 보호 기적을 이루기 위해서라도 부산포 해전 일을
하였고 전쟁 중에 모친이 사망했다는 전갈을 부산시민의 날로 지정한 그 정신을 이어받고
받고도 국가와 백성들을 위하여 전쟁터를 떠날 승화시켜나가야 할 것이다. 우리 부산시민들은
수 없다고 하여 아들을 보내 장례를 치르게 하 이순신 장군의 나라 사랑하는 마음, 백성들을
는 등, 그야말로 선공후사의 표본이었다. 아끼는 마음, 모든 전투를 승리로 이끈 불굴의
진도 앞바다 울돌목에서 단 12척의 배를 가 투지력과 통찰력, 거북선을 만든 창의력, 사심
지고 133척의 왜선을 궤멸시킨 기적적인 명량 없는 선공후사의 청렴한 정신, 명나라 장수를
대첩을 비롯하여 세계해전 역사상 그 유례가 감동하게 한 도량과 배려심을 본받고 함양함
없는 27전 27승 전승의 기록을 자랑하는 이순 으로써 부산을 세계에서 가장 풍요롭고 가장
신 장군은 노량해전에서 왜군의 조총에 맞아 살기 좋은 도시로 만들어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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