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8 - 오산문화 6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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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한잔의 여유
그러나 개중에는 약삭빠른 놈이 있다는 것을 잘 알기에 낙심을 하지 않는다. 논
둑에 가만히 앉아서 벼 포기를 살피면 얼마안가 영락없이 메뚜기를 발견하게
된다. 벼줄기에 찰싹 엎드려 나의 동태를 한참이나 살피다가 옆걸음으로 살짝살
짝 돌아가는 것이다. 메뚜기 몸은 벼와 거의 같은 색깔로 위장을 했기에 건성으
로 보아 넘기면 속기 꼭 알맞다. 벼 뒤에 숨은 메뚜기는 잡히기 마련이다. 콩당
콩당 뛰는 가슴을 진정하며 두 손을 폈다가 벼락 치듯이 감싸면 꼼짝없이 잡힌
다. 손바닥 안에서 꼼지작거리는 감촉이 여간 좋은 게 아니었다. 잡힌 메뚜기는
나와 동무가 된다. 뒷다리를 잡고 방아놀이를 하다가 싫증이 나면 날개를 반쯤
펼쳐 땅에 내려놓고 술래잡기를 한다. 한 눈 팔면 금새 도망가 버리는 메뚜기를
얼른 잡아 제자리에 내려놓는다. 스릴 있는 술래잡기는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나의 쓰잘데없는 일로 해서 지친 메뚜기는 결국 도망가는 것을 포기하고 한 자
리에 머물러 움직이지도 않는다. 나는 그제서야 가엾게 여기고는 벼 포기에 붙
여놓고 또 다른 메뚜기를 잡아 나선다. 그러나 사이다병에는 한 마리도 없다.
그 흔한 메뚜기가 넓은 벼논에서 한가하게 날아다니며 자리를 옮겨 앉던 그런
시절이 어쩌면 좋은 때가 아니었을까. 눈만 뜨면 공부하라는 성화에 시달릴 이
유도 없었고 학원가를 맴돌지 않아도 되었다. 문밖만 나서면 거리를 질주하는
자동차의 홍수가 없어서, 미세먼지라는 말을 몰랐던 시절이 마음 편하지 않았
던가.
지금은 농약을 지독히 뿌려대서 메뚜기가 발붙일 틈이 없다. 농사에 피해를 주
는 것을 알면서도 자유롭게 뛰어 다니는 모습을 그려보는 것은 나만의 기원이
아니리라.
오랜만에 만난 잠자리 한 마리가 내 어릴 적 기억을 되새겨 본다. 살 곳이 마땅
찮아 도시 속 빈터까지 쫓겨 왔는데 얼마 후에는 그곳도 건물이 들어서겠기에
안타까워 자꾸 뒤를 돌아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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