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33 - 오산시사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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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절 세교동(細橋洞) 231
생활환경
세교동은 작은 다리가 많아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나 지금은 거의 없는 상태이다. 세교를 순우리말
로 부르면 잔다리이다. 문헌 기록을 보면 세교리는 정조 13년(1789) 시봉면의 방리였던 것으로 나타 / 지명유래
난다. 지금은 세교 1동, 2동, 3동으로 구분되어 있으나 자연마을 명칭은 각각 큰말, 건너말, 오리골이
다. 1989년 오산이 시로 승격되면서 세마동의 동사무소(현재 세마동행정복지센터)가 위치하고 있으
며, 세마동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 세교동은 크게 남양 홍씨, 전주 최씨, 영월 엄씨, 원주 원씨,
함평 이씨 등이 각각 집성촌을 형성하면서 자연마을을 이루고 살았었다. 그러나 지금은 택지개발이
이루어지면서 옛 모습을 거의 잃어버렸다.
■ 홍촌말(마을)
세교 1동으로 예전에 홍씨가 모여 살아 붙여진 이름으로 주로 남양 홍씨 집성촌이다.
■ 원촌말(마을)
세교 2동으로 원씨가 많이 모여 살아 붙여진 이름이다.
■ 최촌말(마을)
세교 3동으로 최씨가 많이 모여 살아 붙여진 이름이다.
■ 큰말(마을)
세교 1동으로 3개 마을 중 제일 큰 마을이라 붙여진 이름이다. 홍촌말의 다른 이름이다. 세교동에
서 가장 먼저 사람들이 삶의 터전을 가꾼 곳으로 여겨진다. 실제로 세교동에서는 가장 큰 마을이었다
고 하며 또한 가장 먼저 사람들이 이주해 들어온 곳이기도 하다. 큰말은 부처마을 남쪽 경부선 철도
변에 있는 마을이다. 이 마을은 조선시대 성주 이씨 후손 중에 이 참봉이라는 사람이 큰 부자로 살았
기 때문에 ‘큰말’이라 칭하고 있으며, 조선시대에는 광주군 월곡면 대대리라 불렀다. 성주 이씨를 비
롯하여 광주 이씨, 용씨 등이 세거했으며, 현재는 성주 이씨가 대성을 이루고 있다. 큰말은 마을의 동
남쪽 지역을 ‘웃말’, 서북쪽 지역을 ‘아랫말’이라 각각 부르고 있다. 큰말은 홍씨들이 가장 먼저 마을에
정착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현재는 외부로부터 들어온 사람들이 많아 특별히 대성을 이루고 있는
성씨가 없다.
■ 오리골(마을)
세교 3동으로 세교동에서 가장 남쪽 산 밑에 있는 마을이며, 마을이 있는 골짜기의 길이가 오 리나
된다고 하여 붙여졌다는 설이 있다. 일설에는 어디를 기준으로 했는지는 모르나 오 리 거리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한편 또 다른 일설에는 예전에 마을 뒷산에 오리나무가 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