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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없어졌다고 한다. 아쉽게도 각각의 명칭을 무엇이라고 하였는지에 대하여는 조사되지 못하였다. 177
아무튼 제보자께서 터줏가리라고 부르는 짚주저리는 조그만 것이 두 개, 큰 것이 하나, 그리고 또 하 구비전승
나가 있었다는 기억뿐이었다. 필자가 큰 것이 업가리가 아니었는가 물으니 그렇지 않다고 하였다.
그런데 아주 큰 독이 큰 짚주저리 밑에 있었다고 기억하였으며 그 항아리 안에는 벼가 들어있었던 · 민속
것으로 기억하였다. 그리고 “집안에 무슨 일만 있으면 할머니가 물 떠놓고 거기 가서 빌었어요. 누가 · 경기도당굿과
아프면 빌고.” 하는 것은 늘 할머니의 몫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전에 누가 아프면 귀신 쫓는다고 동쪽으로 뻗은 복숭아나무를 불 때고 때리면서 뭐라고
주문을 해요. 우리 아버님까지는 그렇게 하셨어요. 불을 때면서 솥뚜껑을 두드리셨어요. 그 이름이
경기재인청
있는데 살풀이라고 하나 무슨 이름이 있어요. 동쪽으로 난 복숭아 가지. 옛날에는 그런 것도 많이 했
죠. 그리고 우리 할머니 대에만 해도 내가 초상집에 가면 고춧가루하고 소금을 꼭 양복주머니에 넣어
주셨어요. 이게 뭐냐고 물어보면 귀신 붙지 말라고 그러는 거라고 그랬어요. 그리고 쥐불놀이하는데 / 성씨
왼손으로 술 석 잔 먼저 먹으라고 하고, 귀신 붙지 말라고, 우리 할머니 돌아가신 지가 얼마 안 되었 · 인물
어요. 92세에 돌아가셨는데. 우리 할머니가 나 6학년 때 위암에 걸리셨는데 뭘 먹고 나으셨는지는 모
르겠는데 92세까지 사셨어요. 오히려 할아버지가 먼저 돌아가셨어요.”
제보자의 말을 빌면 할머니께서 영험함이 있는 분이셨던 것으로 추측된다. 이는 집안에서 발생하
는 크고 작은 변고를 주로 집안의 여자 가운데 가장 연장자가 다스리던 풍속에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제보자는 다시 말을 이어 터줏가리 네 개에는 모두 볍씨만 들어있었다고 한다. 춘궁기에 쪄서 먹으
려고 넣어두었던 것으로 기억하였다. 그리고 방안에는 제석주머니가 있었다. 주머니에는 쌀을 넣어
두었으며 한지로 고깔을 만들어 씌워두었었다. 또한 대문에는 엄나무를 걸어두었다. 귀신이 들어오
지 말라는 기원의 뜻으로 걸어두었다고 한다. 물론 대감독도 있었다. 그리고 칠석에는 떡을 해서 먹
었고, 가을에는 가을걷이 끝나고 떡을 했다. 고사를 지내고 나면 이웃집에 떡을 돌렸는데 당시에는
떡을 몇 시루나 했었다. 지금은 반 말 정도하여 가을시루를 하고 있다고 한다.
제보자 : 통장(남, 63세)
옛날에는 성줏대가 대청의 대들보에 걸려있었으나 지금은 없다. 그리고 터주도 모셨었다. 터주는
무려 세 개나 되었다고 하는데 각각의 명칭에 대하여는 기억하지 못한다. 제보자가 교회를 나가게 되
면서 모두 태워 없앴다고 한다.
제보자 : 이철주(남, 68세)통장, 윤명원(남, 62세)
17) 탑동
제보자의 댁에서는 정월고사를 지냈다. 정월 열 나흗날 팥시루떡을 하고 송편을 하고 오곡밥을 하
였다. 그리고 이날은 오곡밥을 해 먹고 달맞이 가고 저녁에 또 밥도 훔치러 다니고, 오곡밥 훔쳐서 밥
볶아 먹고 하는 놀이도 즐기는 날이었다.
그리고 가을에는 가을고사를 지냈다. 이날 떡을 하면 시루째 대청에 먼저 놓는다. 그리고 뒤란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