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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누읍동
제보자의 집에는 업가리는 모시지 않았다. 그러나 인근의 집에서 업가리를 모시고 있었다고 한다.
그 집은 마을에서 제일 부자였다고 한다. 그리고 업가리는 제 각각이어서 모시는 업이 달랐다. 족제
비 업가리, 구렁이 업가리, 돼지 업가리 등 업가리도 종류가 많았다고 한다. 그 부잣집에서 어떤 업을
모셨는지는 모르나 업신앙이 매우 철저하였던 것으로 기억하였다.
3) 내삼미동(대량굴)
대량굴에는 예전에 터주나 업을 모시고 있는 집이 많았다고 한다. 터주와 업을 함께 모시는 집도
있었고, 터주만을 모시는 집도 있었다. 터주는 작고 업은 컸다. 그러나 업이 무슨 업이었는지에 대한
기억은 없다. 집에 좋은 것이라고 좋은 기운이 들어오라는 기원으로 업을 모셨다고 한다.
3. 터주
터주는 생산을 관장하는 신격이다. 터주는 가옥(家屋)이 들어선 택지(宅地)를 관장하면서 농토(農
土)를 관장한다. 터대감, 터줏대감 등으로 불린다. 일상에서 누가누가 이 지역의 터줏대감이다라고
하는 것도 오랜 인연과 영향력을 의미하는 것도 터대감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한다. 『향토문화전자
대전』에는 터주신앙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터대감, 터줏대감, 터왕터주 등으로도 불린다. 터주는 성남지역에서 현재까지 가장 강하게 남아
있는 가신으로서, 이는 다른 경기도 지역도 마찬가지이다. 뒷마당이나 장독대 앞에 터주를 상징하는
신체(神體)를 터주가리라고 하는데, 가신의 신체 중에서 가장 마지막까지 남겨두었다 없애는 신체라
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또한 현재는 거의 남아 있지 않다. 터주가리는 매년 짚으로 만든 가리를 갈
아주는데, 그 안에는 햅쌀이나 벼를 담아둔 항아리를 놓기도 한다. 항아리 단지 안에 둔 쌀도 매년 햅
쌀로 바꿔주는데, 가리 안에 단지를 두지 않고 가리만을 만들어 놓는 형태도 있다(분당구 운중동 이
강남 씨의 사례). 항아리 주변을 짚으로 두른 다음, 그 위를 다시 삼각형으로 지붕을 만들어 덮는 것
으로 가리의 허리춤을 짚으로 묶고, 꼭대기 부분도 짚으로 한 번 더 묶어준다. 허리춤에는 한지를 길
게 접은 것을 끼워둔다. 그 쌀은 집안 식구들끼리 밥을 해 먹거나 혹은 떡을 하여 제물로 올리기도 한
오산시사 다고 한다. 이 가신은 성남지역에서는 그 신체를 모셔두거나 혹은 신체를 모셔두지 않는 건궁이지만,
10월 상달 고사를 지낼 경우에는 꼭 신앙의 대상이 된다. 과거 터주를 위해서는 붉은 설기(팥시루)를
통째로 터주에게 올렸지만, 요즘에는 성주에게 올린 시루를 터주에게도 올리거나 혹은 붉은설기 몇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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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 각을 막걸리와 함께 올린다고 한다. 터주는 성주 다음으로 제물을 올리는 대상으로 인식되고 있다.”
180 22)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