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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수동 185
정진용 어른 댁 단골무당은 화성시 정남면 내리에서 왔다. 내리 안념에서 왔다는 단골무당은 세습 구비전승
무계열을 아닌 것으로 보인다. 부부가 함께 다니는 무속인이었거나 가족 단위로 구성된 무속인이 아
니라 혼자 다니면서 필요할 때 다른 무속인이나 장구재비들을 동원하였다고 한다. · 민속
제보자 : 정진용(남, 82세), 김언련(여, 77세) · 경기도당굿과
옛날에는 1년에 한 번 집안에서 굿을 하였는데 단골무당은 남촌에서 왔었다. 성도 이름도 모르지만
옛날 남촌은 골목골목 무당집이었는데 그곳에 사는 무당이 단골로 다녔다. 풍채가 좋아 뚱뚱하였던
경기재인청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제보자의 큰댁에서는 해마다 굿을 하고 나면 단골무당이 창호지로 성줏대를 말아서 대들보에 걸어
주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풍속도 집안의 모든 치성을 담당하던 제보자의 형님께 / 성씨
서 병이 들어 기독교 교인이 되면서는 사라졌다.
제보자 : 이규란(여, 71세) · 인물
2) 가장동
가장동에는 유씨와 한씨가 대성이다. 조문영 어른댁의 제보에 의하면 유씨들의 단골은 화성시 정
남면 수면리에서 왔다고 한다. 그리고 한 씨네 단골은 오산에서 왔다고 한다.
수면리는 가장동에서 정남방향으로 가다가 용수리 전에 있는 마을이다. 유 씨네 단골은 이 마을로
들어와서 그 시어머니와 함께 무업을 하다가 시어머니가 돌아가시자 며느리가 이어서 했다. 그리고
그 며느리도 사망하였다. 그런데 제보자에 의하면 큰 굿을 하던 무당은 아니었던 듯하다. 혼자 와서
징만 치면서 고사를 드렸다고 한다. 그리고 유창진 할머니께서는 당신의 친정단골이 수면리 이씨 단
골네 둘째 아들의 부인이었다고 한다. 이 집안은 옛날에 책을 놓고 무업을 배운 집안이었다고 기억하
고 있다. 그리고 며느리들은 어려서 데려다가 무업을 가르쳤다는 것이다. 제보자이신 유창진 할머니
의 친정에서는 아이들이 아파도 굿을 하고 어디 다치기만 하여도 굿을 하였다고 하였다.
3) 갈곶동(가룻)
갈곶동의 가룻에서는 주된 단골이 이북에서 피난을 나온 사람이었다. 그리고 또 다른 단골무당은
오산 가수동에서 이곳으로 시집을 온 분이었다. 두 분이 모두 이 마을에서 신을 모시고서 살다가 두
분 다 돌아가셨다고 한다.
4) 고현1동(높은재)
높은재의 단골은 원동4리 대원아파트 동네에 살았다. 단골은 여자 무당으로 부산동 이 씨네의 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