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88 - 제6권
P. 188

인이었다. 여자가 들어오면 남자들이 같이 들어와 장구도 치고 하였다고 한다. 그들을 화랭이라고 불
                  렀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으며, 단골을 불러다가 굿을 하고 나면 집안의 대들보에 성줏대를 새로 만들

                  어서 걸었다고 한다.
                    그 당시만 하여도 집안에서는 터주와 제석을 다 모셨지만, 지금은 하나도 남아있는 게 없다고 하였다.





                  5) 궐3동(대호밭)

                    이 마을의 단골은 중외제약 있는데 돌고지라는 데에서 왔었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이 씨이거나 김
                  씨였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제보자댁의 단골은 평택시 오성면에서 뚱뚱한 만신 할머니가

                  오셨다고 한다.





                  6) 금암동

                    이 마을의 단골은 돌고지 한 씨네에서 왔었다. 단골은 여름에는 보리 한 말을 걷어가고, 가을에는
                  벼 한 말을 걷어갔다. 그리고 굿을 할 때면 인척관계에 있는 사람들인지는 모르겠지만 서너 명이 와

                  서 했다고 한다.
                                                                              제보자 : 한남희(남, 79세), 공민섭(남, 61세)


                    금암동 전 씨네 단골은 수원에서도 평택에서도 들어왔다고 한다. 평택단골에 대하여는 기억이 없

                  다. 그러나 수원에서 오는 단골은 여자 무당이었다. 그 무당이 들어와 굿을 하게 되면 뒷잽이꾼들이
                  함께 왔다. 그들이 혈연관계에 있던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그렇게 함께 오는 사람들은 장구도 쳐주

                  고 하면서 굿을 진행하였다고 한다.
                    뒷잽이꾼이란 굿에서 무악(巫樂)을 연주하며 반주를 하는 악사(樂士)를 말하는 ‘잽이’이다. 굿에서

                  는 보통 3, 4명의 남자악사들이 음악을 담당하는데 악사의 규모가 곧 굿의 규모이기도 하다. 삼잽이
                  니 사잽이니 하는 것은 바로 악사의 숫자를 말하는 것이다. 지역적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보통은 무

                  당의 남편이 장구를 쳐주는 예가 많았다. 그리고 이렇게 가족으로 구성된 무속인 집단을 화랭이라 부
                  르는데 금암동의 경우에는 뒷잽이꾼이 가족이 아니었다는 것은 화랭이들이 들어온 것이 아니라는 것

                  이다.
                                                                                        제보자 : 전응식(남, 77세)
      오산시사


                  7) 누읍동

      제             누읍동의 단골은 마을에 살았다고 한다. 이름이나 별호는 모르나 전주이씨 집안이었던 것은 틀림
      6
      권
                  이 없다. 친정이 어디인지는 모르지만 이 마을로 시집온 뒤에 솟아서 신을 받아 무당이 되었다고 한
                  다.
    186
   183   184   185   186   187   188   189   190   191   192   1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