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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컸다.
이 마을에 단골은 아니었으나 주변에 살던 무당들의 별호를 기억하고 있었는데 갈곶리 새만신, 밀
머리 깜댕이, 피양기생(평양기생) 등이 있었다고 한다.
제보자 : 엄우영(남, 72세)노인회장, 서사래(여, 89세), 통장(남, 61세)
19) 원동(당말 : 대원1통)
당말 단골은 오산 남촌에서 왔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남촌은 철길 옆으로 무당집이 많이 있었다
고 한다. 당시에 굿을 하러 단골무당이 오면 네 명 정도가 함께 왔던 것으로 기억하였다. 대개의 경우
남자는 북잡이를 하고 징치는 사람, 단골무당 그리고 새끼무당 이렇게 넷이었던 것으로 기억하였다.
웬만큼 형편이 되는 집들은 매년 가을에 굿을 하였으며 한 번 굿을 하면 삼사일 동안을 하였다고도
하였다.
남촌에 무당이 많았기도 하지만 주로 들어오는 단골이 남촌사람들이라 남촌무당 남촌무당 하는 말
을 많이 들었다. 그리고 부산동에도 무당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하였다. 그리고 당말에도 무당이 한
분 있었다고 하는데 그 분의 남편은 정 씨였다. 그리고 그 무당은 결혼을 하고 나서 신이 내려 무당이
되었다고 한다.
단골을 삼고 나면 봄에는 보리 한 말, 가을이면 쌀 한 말을 걷어갔다. 당말의 무당은 작두는 타지
못하였으며 작두를 타야할 굿이 나면 다른 사람이 와서 작두를 탔다고도 기억하였다.
“나는 원래 안 믿는 사람인데 저희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넋거리라고 했는데. 우리 어머니
가 술을 전혀 못 잡수세요. 근데 우리 어머님한테 할아버지가 들어온 거예요. 나는 방에 있는데 대나
무 된 거를 가지고, 신이 오르니까 어머니가 대번에 막걸리부터 달라고 그러는 거야. 이제 할아버지
가 들어온 거야. 그래서 그때 제가 초등학교 6학년이었기 때문에 생생하게 기억을 한다고. 막걸리 한
잔을 쭉 들이키더니 차주식 씨라고 우리 할아버지하고 아주 단짝 친구가 있었어요. 친구를 막 끌어안
고 우는 거야. 근데 뒤란으로 가시더라고, 뒤란으로 가시더니 널판때기 이만한 거를 누구네 갖다 주
셔야 하는데 이걸 못 갖다 주고 가셨다고, 그게 뭔가 보니까 옛날에 못자리 낼 때 쓰는 평평한 그거더
라고. 그거를 그 밤에 갖다 주고 와서 돌아다니고 막 그냥 자기 하고 싶었던 얘기 다 하시고, 내 동생
들은 어려서 밤에 다 자고 그러니까 막 만지고 그러시더라고 이제 다 끝나고, 한두 시간을 그렇게 돌
아다니시더니 무당이 주술을 딱 거니까 휙 쓰러지시더라고, 그래서 내가 그 이튿날 물어봤어요. 그랬
더니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난다고 하시더라고, 지금 믿을 수도 없고, 안 믿을 수도 없고 참 희한하더라
오산시사
고요.”
이러한 경험 때문에 무속을 안 믿을 수도 없게 되었다고 하신다.
제 제보자 : 통장(남, 63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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