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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하고 못하느냐에 따라 바뀔 수도 있음이 실질적으로 확인된 것이다. 당연한 일이라 생각할 수 있으                                         189
                  나 직접적인 진술을 통하여 조사되기는 매우 드문 경우이다.                                                                구비전승





                  15) 수청동(수청말)                                                                                    · 민속

                    집안에 우환이 있어 푸닥거리 정도를 하면 수청2동의 할머니가 하셨고, 굿을 해야 하는 경우의 단                                         · 경기도당굿과

                  골은 화성시 안녕리 돌고지에서 왔다. 그분은 큰 굿을 할 때 왔는데 따님하고 둘이 다니셨다. 그리고
                  그 단골은 수청동 일대의 큰 굿을 거의 다 했던 것으로 기억되고 있다.
                                                                                                                    경기재인청



                  16) 양산동(큰말)                                                                                      /  성씨

                    양산동에서는 순흥 안씨 단골과 문 씨네 단골이 달랐다. 안 씨네는 대황교에서 들어왔다. 대황교에
                  서 온 무당은 배워서 한 사람이라고 하는데 집안에서 배웠다는 것인지에 대한 제보자의 기억은 없었                                           · 인물

                  다. 문 씨네 단골은 벌말의 귀농엄마라는 사람이었는데 이 분이 돌아가시고는 지금은 박수무당이 단
                  골이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박수는 동두천에서 왔다고 한다.





                  17) 은계동

                    은계동의 단골은 각처에서 다양하게 들어왔다고 한다. 지금 생존하였다면 백살이 훌쩍 넘었을 것
                  이라고 하며 기억나는 단골의 별호는 깜둥이 무당, 찔뚝바리 무당 등이었다. 깜둥이 무당이라는 분은

                  지금의 원동에서 왔다고 기억하였다. 깜둥이 무당은 굿을 하러 오면 두 사람이 더 왔다고 하는데 그
                  들은 장구를 치고 제금을 두그려 주고 하는 사람들이었으며 가족 관계는 아니었다고 기억하고 있었

                  다.
                    단골무당은 신이 내린 사람이었다고 하며 작두를 잘 탔다고 한다. 떡시루를 이고도 작두를 타는데

                  아무것도 붙잡지도 않고 작두를 탔다고 한다. 그리고 무당집에는 딸을 출가시키지 않았는데 이는 딸
                  에게도 신이 내릴까 하는 염려 때문이었다고도 한다.

                    그리고 그 집에 시영을 걸었기 때문에 칠석날에는 단골집을 찾아가 칠석맞이를 들였다고 한다.
                    한편 강복순(77세) 할머니 댁에는 오산 시장에 살던 무당이 단골로 다녔다고 한다.





                  18) 원동(우촌)

                    단골은 갈곶리에서 왔다. 성도 이름도 별호도 기억하지 못하지만 큰 굿을 하게 되면 세 사람이 들
                  어왔다. 장구치고 북치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굿에서 북을 치는 경우는 없다. 이로 보아 무악

                  을 반주하는 두 사람이 들어왔던 것이며 한 사람은 징을 쳤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무당과 반주를
                  맞는 사람 가운데는 부부관계에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병굿을 할 때가 굿의 규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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