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솟았다는 말은 신이 내렸다는 말이다. ‘솟았다’, ‘내렸다’, ‘박수쳤다.’ 등은 신이 내렸다는 의미로 쓰 187
인다. 구비전승
8) 두곡동 · 민속
단골은 남촌에서 들어왔다. 거기에 시영을 걸어 시영어머니다. 할머니의 친정에서는 골매굴이라고 · 경기도당굿과
용인시 기흥에 있는 마을에서 단골이 들어왔다고 한다. 당시 기억으로 그 기흥의 무당은 큰굿을 하는
무당이었다고 한다.
경기재인청
9) 부산동 / 성씨
부산동 김지영 어른께 이 마을의 단골들과 가계세습 무속인 집단에 대하여 소상하게 이야기를 들
을 수 있었다. 이용우 선생의 본명을 비롯한 그 가족들에 대한 내용들을 들을 수 있었다. · 인물
예전에 이 마을에는 두레패를 가르치던 신경식이라는 분이 사셨는데 부인은 무당이었다. 마을의
상쇠이기도 했으며 호적도 잘 불어 방송국에서도 찾을 정도로 기량이 뛰어났다고 한다.
그리고 지삼용이라는 분이 계셨는데 자전거를 뒤로도 잘 탔을 만큼 재주가 있었다. 그리고 이용우
선생은 소리를 잘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이 세 사람이 이 마을의 재주꾼들이었다. 신경식, 지삼
용, 이용우 선생이 마을의 두레패들에게 상모돌리기를 비롯한 재주를 가르쳤을 뿐 아니라 북이며 장
구며 꽹과리 등의 연주도 가르쳤다고 한다. 지삼용 선생에 대하여는 명확하지 않지만 이용우, 신경식
의 집안은 화랭이 집단이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그리고 이용우 선생의 경우 본명이 이남북이었으며 동생이 이서북이었다고 한다. 이용우 선생의
아버님은 부산동 교회 옆에 사셨고, 그러다가 이용우 씨는 절골에 접한 부산동에 살았다. 그러다가
이용우 선생은 수원에 사는 부인에게로 가서 사셨다고 한다.
한편 이 마을에는 외모가 빼어나고 노래를 잘하는 홍도라는 분이 계셨다고 이 마을에서 노래를 배
웠다고 한다. 이러한 정황들로 보아 부산동에는 재능이 뛰어난 분들이 여럿 살았다는 점이 분명하다
고 판단된다. 또 그 재능의 근간에 가계세습무 집단이 있었음도 확인되었다.
10) 벌음동
이기호 어른의 어머니께서 단골집을 다니셨다고 한다. 그 당시 단골무당은 정남에 살고 있었다. 성
도 이름도 모르지만 화성시 정남면 음양리와 망월리가 있는데, 그곳으로 다니셨다. 이렇게 단골집을
다녔던 기억은 마침 그 마을에 이기호 어른 집안의 산소가 있어 산소를 다니면서 그 단골무당의 집을
들렀다고 기억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