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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 보아 한 마을이라도 개인적 의식에 따라 풍속의 차이가 있었음이 확인된다. 참고로 할머니의 친
                  정이 화성시 송산면 용포리인데 그 마을에서는 아들이고 딸이고 상에 받쳐서 물을 떠 놓았다고 한다.





                  18) 원동(우촌)

                    아이를 낳으면 인줄을 걸었다. 아들을 낳으면 숯하고 고추를 끼워 걸었고, 딸을 낳으면 솔가지만을

                  끼웠다. 물을 떠 놓았는데 아들을 낳았을 때만 물을 떠놓는다. 물을 떠놓는 것도 아들을 낳았다는 표
                  시였다고 한다. 인줄을 거는 것은 부정한 사람이 들어오지 말라는 표시였다고 한다.
                    그리고 흥미로운 것은 소가 새끼를 낳으면 물을 떠놓지 않았고, 돼지가 새끼를 낳으면 물을 떠놓았

                  다는 점이다. 이는 소보다 돼지를 더 중요한 가축으로 인식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19) 원동(당말)

                    아이를 낳으면 인줄을 걸었다. 사내아이를 낳으면 왼새끼를 꽈서 고추하고 숯을 꽂으며 그리고 솔
                  개비와 종이도 꽂았다고 한다. 종이를 꽂는다는 점이 특이하였다. 그리고 여자의 경우는 솔가지와 숯

                  을 꽂았다고 한다. 이렇게 하는 것은 부정을 타지 말라는 뜻에서였다. 특히 숯이 부정을 타지 말라는
                  뜻이었다고 한다. 물을 떠 놓았는데 남자와 여자의 차이는 없었다. 황토는 깔지 않았고 상에다가 받

                  쳐서 떠 놓았다고 한다. 이미 인줄을 통하여 남자인지 여자인지는 구분이 되었으니 굳이 물을 떠 놓
                  는 것으로 남녀를 구분하고자 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적어도 당말에서의 출산풍속은 남녀에 대한

                  차별이 아니라 구분의 의미였던 것으로 보인다.




                  20) 지곶동

                    지곶동에서도 아이를 출산하고 나면 인줄을 건다. 인줄은 왼새끼를 꼬아서 만드는데 인줄은 대문

                  에다 내걸었다. 아들과 딸을 인줄을 통하여도 구분되었다. 아들의 경우에는 숯과 그리고 솔가지를 걸
                  면서 특히 고추를 걸어 아들을 낳았음을 표시하였다. 그리고 딸의 경우에는 숯과 솔가지만을 걸었다.

                  이렇게 하여 인줄만으로도 아들과 딸이 구별되는 것이다.
                    그리고 대문간에는 물을 떠놓았다. 이는 부정한 사람이 집안에 들어오는 것을 금하는 것이었다. 그

                  러므로 아들과 딸에 차별은 두지 않고 조그만 쪽상에 하얀 대접에다가 물을 떠놓았다고 한다.
      오산시사



                  21) 탑동
      제

      6
      권             출산의 풍속에 대하여 다른 마을보다 소상하게 그렇게 행하는 근원적 의식 등이 조사되었다. 아이
                  를 낳으면 금줄을 거는데 아들은 고추와 숯 그리고 소나무를 걸었고 딸은 소나무만을 껴서 매달았다

    196           고 한다. 다른 마을들과는 확연히 차이를 보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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