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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송편의 양은 곧 볏섬의 양이었던 것이며 볏섬이 많아야 풍년이 드는 것과 같이 송편을 많이 빚어
올림으로써 풍년이 들기를 기원하였던 것이다.
상달에는 떡을 해서 대청에 먼저 놓고, 할머니 뒤주에 놓고, 터주에 갔다가 놓고, 창고에 가서 볏섬
을 쌓아 놓은 앞에 시루를 올리고 우물에 갔다가 올리는 순서로 시루를 진행하였다. 그리고 각 방이
라든가 시루를 올리지 않은 곳마다 떡을 접시에 담아 놓았다. 그렇게 집안의 곳곳에 시루를 올리거나
떡을 올린 다음에는 마을의 집집마다 떡을 돌렸다고 한다.
3) 고현동 높은재(서낭고사)
예전에 높은재에서는 갈참나무를 마을의 서낭으로 모셨다. 서낭나무 곁에는 돌무더기도 있었다고
전한다. 마을주민 전체가 함께 제의를 드리는 일은 없었으나 풍물놀이 할 적에는 거기서 풍물을 좀
두드리고 절하고 다녔다. 그러나 일부러 날을 잡고 준비해서 고사 지내는 것은 없었다.
그러나 시월상달고사를 하거나 개인적으로 고사를 지내면 떡을 갖다 놓았다고 한다. 그렇게 개인
적으로 치성을 드리고 나면 서낭에 실 같은 것을 매어 놓았다고도 한다.
4) 고현동 우촌(서낭고사)
옛날에는 지금의 우촌교회 자리에 서낭이 있었다. 서낭나무는 소나무였으며 매우 컸던 것으로 기
억되고 있다. 그런데 그 나무가 썩어서 없어졌다. 그리고 서낭소나무 옆에는 돌무더기가 있었다고 한
다. 서낭의 위치는 지금의 우촌교회자리가 원동과 우촌을 넘나드는 고갯마루였다.
오산시사
내삼미동 서낭 내삼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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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궐동 대호밭(서낭고사)
198 마을에서는 마을 단위의 제사는 없었지만 대호밭에서 가장리 쪽으로 넘어가는 고개에는 서낭이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