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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탑동

                    ‘두드러기’는 남의 집, 세 집의 화장실 지붕에 이엉을 빼다가 아궁이에 불로 태워가면서 그 연기를
                  쏘였다. 소금을 몸에 뿌리면서 ‘중도 고기 먹더냐?’ 하면서 내려 쓸어내린다. 3일 동안 그렇게 하면 두

                  드러기가 들어갔다.







                  5. 홍역


                    우리 선조들은 홍역(紅疫)은 누구나 반드시 앓게 된다고 생각하였다. “홍역은 죽은 뒤에라도 앓는
                  다.”고 하는 말은 홍역이 일반적이었으며 사람이라면 누구도 피해가기 어려운 질병이라고 생각하였

                  던 듯하다. 그러니 ‘홍역을 앓았다.’고 하거나 ‘홍역을 치뤘다.’고 하는 말 속에 반드시 겪어야 하는 통
                  과의례를 지칭하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홍역은 옛사람들에게 큰 병이었고 동시에 무서운 병이었다. 홍역을 앓다가 죽어가는 사람도 많았
                  으며 홍역을 앓고 살아남았지만 얼굴에 군데군데 콩알만한 크기로 팬 곳이 발생하여 얼굴이 흉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홍역을 치료하기 위해 토끼의 똥을 처방했거나, 가재를 처방하였던
                  것들이 자연의 현상과 원리를 병의 증상에 적용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다음에 소개하는 오산시의 사

                  례도 이에 다름없다.





                  1) 가장동

                    ‘홍역’의 경우는 산에 가서 산토끼 똥을 주어다가 삶아 그 물을 먹이면 열이 내리고 홍역이 낫는다
                  고 하였다. 즉, 홍역이란 열이 나고 열꽃이 얼굴이나 몸에 돋는 것인데 이는 열을 내려야만 가능하다
                  고 믿어졌다. 토끼똥을 바로 열을 내리는 약으로 여겼던 것이다.





                  2) 궐동(대호밭)

                    ‘홍역’은 가재가 좋다고 해서 몇 십리 밖에 나가서 잡아 온 적이 있다. 가재를 생 것을 찧어서 환부

                  에 붙이면 낫는다. 그렇게 해서 열을 내리게 하면 낫는다.
      오산시사


                  3) 금암동
      제

      6             ‘홍역’ 할 때는 가재로 잡았다. 제보자의 동생분이 한국전쟁 통에 홍역을 앓았는데 가재를 잡으려다
      권
                  잡지 못하였다고 한다. 결국 홍역으로 동생을 잃게 되었는데 가재만 있었으면 살았을 것이라고 한다.
                  그만큼 홍역을 잡는 데는 가재가 효험이 있다고 믿고 있었다. ‘홍역’은 바람을 쐬면 안 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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