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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수 있었던 화랭이의 총수는 15쌍이었다. 그리고 그 연령은 평균치면 70대가 되겠고, 개중에 확인                                       247
                  된 예로도 이제 기운이 없어서 굿에 종사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리고 15쌍이라고 했지만 대                                         구비전승

                  부분 독신이고, 남자의 경우면 부인들이 있었으나 재취, 작은부인들이 대부분이다. 그 부인들은 대개
                  무업에 종사하는 듯했으나 자연 그들이 다 세습 단골 무녀일 수는 없고 강신무녀인 경우도 있다.”며                                          · 민속

                  1970년대 경기도당굿의 화랭이의 실태를 보여준다. 이 시기 도당굿을 연행하였던 화랭이들은 얼마                                           · 경기도당굿과
                  남지 않았으나 대표적 화랭이로는 이용우·이충선(악사)·지갑성(악사)·조한춘을 들 수 있다.





                                                                                                                    경기재인청
                  1) 경기도당굿 대표적 화랭이와 미지
                    (1) 이용우(1899~1987)

                    경기도 도당굿 화랭이. 경기도 수원군 청호면 부산리(경기도 오산시 부산동)에서 전통적인 세습무                                           /  성씨

                  인 이종하(李鍾河)와 미지(巫女) 사이에 태어난 경기도 대표적 화랭이. 기록상 12대에 걸쳐 무업을 대                                       · 인물

                  물림한 전통적 세습무가 출신이다. 이용우는 경기도당굿 중 가장 중요한 군웅노정기나 뒷전을 도맡
                  아서 연행했다. 이용우는 계모였던 박금초에게서 8세부터 판소리를 배웠으며, 부친이 이끄는 창극단
                  을 따라 전국을 유랑했는데, 이때 함께 다닌 명창으로 송만갑과 이동백 등이 있었다고 한다. 15세부

                  터 20세까지는 광무대를 비롯하여 단성사 등을 따라 전국 각지를 유랑하며 소리를 했다고 한다. 22

                  세 되던 무렵에는 대금 공부를 통해서 잽이(악사)로서 경기도당굿을 다녔다고 한다. 이후 숙부인 이
                  종만에게서 6년 동안 경기도당굿에 필요한 춤과 노래, 무악 장단, 마달(문서), 굿의 진행 절차 등을
                  본격적으로 배우면서 화랭이의 길로 접어든다. 29세에 경기도 광주에서 경기도당굿에 입문했다. 30

                  세 무렵 창극단을 따라 부정기적으로 지방에도 다녔으며, 틈틈이 굿에도 참석했다. 그때 창극인 임춘

                  앵과 4년 동안 같이 다니기도 했다. 이후 경기도당굿에만 전념하여 당대 최고의 화랭이로 이름을 날
                  렸다. 또한, 이용우는 판소리나 대금, 꽹가리, 춤 등에도 능숙한 다재다능한 명인이었다. 이용우는 만
                  혼을 해 슬하에 3남 2녀를 두었다. 88세인 1987년 5월 6일 경기도 안성의 한 저수지에 낚시를 다녀오

                  다 교통사고로 세상을 달리했다.



                    (2) 조한춘(1919~1995)


                    경기도당굿 화랭이. 1990년 국가무형문화재 제98호 경기도당굿 기예능보유자로 지정됐다. 조한춘
                  은 경기도 김포 출신 세습무로 외가도 세습무 계통이다. 당시 유명한 세습무였던 의부 김종환을 따라
                  8세부터 도당굿에 다니기 시작했다. 그 후 김포·부평 일대의 영좌로 유명했던 이덕만에게서 굿을

                  배웠다. 김포 출신의 유명한 세습무녀였던 서간난의 사위이다. 주로 인천·부천지역을 중심으로 경

                  기도당굿을 연행하였는데 마달(굿의 문서)은 풍부하지 못했으나 재담을 잘하고 춤도 잘 추어 인기를
                  끌었다. 군웅굿이나 손굿, 뒷전을 할 때는 소리와 재담을 섞어서 밤을 새워 굿을 했다. 김종환에게서
                  부천시 장말을 단골판으로 인계받았고 인천시 동막도 그의 단골판이었다. 경기도당굿의 전승이 거의

                  끊어져 화랭이의 역할이 줄어든 후에는 주로 악사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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