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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김해김씨의 세거지 변천 과정을 살펴보면 7세 김영견(金永堅)의 후손이 충남 대덕, 충북 충                                       295
                  주, 중원, 제천, 청주, 청원, 경남 밀양 등지에 세거하였으며, 김영견의 동생 김영서(金永瑞)의 후손들                                      구비전승

                  은 경북 청도, 영천, 충남 금산, 전남 무안, 강진, 곡성, 경기 안성, 양평, 용인 등에 세거하고, 김희경
                  (金希敬)의 후손들이 경기 강화, 여주, 화성에 세거한 것으로 보이고, 김영순(金永純)의 후손이 화성                                        · 민속

                  등지에 살았다는 기록으로 보아 이곳 오산 원동의 김해김씨 집성촌은 김령군의 7세손 김영정과 김영                                           · 경기도당굿과
                  순의 후손으로 추측되나 자세한 기록이 없어 더 이상 살펴보기 어렵다. 다만, 1957년 『경기도지』에서

                  조사된 집성촌으로 기록된 14개 마을 중 원동에 김해김씨가 34호 세대수를 이루며 세거하였다고 전
                  해지고 있다.
                                                                                                                    경기재인청




                  제8절    궐동 연안김씨                                                                                   /  성씨


                    궐동의 연안김씨(延安金氏) 시조는 김라한(金邏漢)으로 선계는 김알지의 후손이다. 기록에 의하면                                          · 인물

                  형제가 왕에게 직언하였다가 형은 강릉으로, 아우는 연안으로 각각 유배되었다고 한다. 시조 김라한
                  이 바로 연안으로 유배 간 아우의 후손이며 이후 연안을 본관으로 하였다고 한다. 가문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시조 김라한의 6세손 김도(金濤)가 고려 공민왕 때 문과에 급제하여 밀직제학(密直提學)을
                  지냈으며 슬하에 4형제를 두었는데 모두 벼슬길에 나아갔다. 장자(金自知)는 문과에 급제하여 태종

                  17년(1417) 경기도 관찰사를 지내고 세종 10년(1428) 형조판서에 올랐다. 차남(金汝知)은 문과에 장원
                  으로 급제하여 태종 때 대사헌을 지내고 세종 때 정조사(正朝使)로 명나라에 다녀와 참찬(參贊)을 역

                  임하였다. 셋째(金致知)와 넷째 (金學知)는 예빈사윤(禮賓寺尹)과 도관찰사(都觀察使)를 각각 역임하
                  였다.

                    한편, 연안김씨 주요 세거지를 살펴보면 8세손 김안주의 아들 4형제 등이 평북 정주, 의주, 역주,
                  곽산 등지에 세거를 이루었으며, 15세손 김우백(金宇白)의 후손들이 경기도 시흥을 거쳐 수원지역에

                  세거하였다. 이처럼 입향조들의 경로를 살펴볼 때 궐동에 세거를 이룬 연안김씨 입향조는 김수백의
                  후손으로 추측되나 자세한 기록이 없어 더 이상 살펴보기 어렵다. 다만, 1933년 조선총독부 중추원에

                  서 발행한 성호면의 집성촌을 조사한 『조선의 취락』에 의하면 궐동의 연안김씨 가구 수가 20호였으
                  며, 1957년 『경기도지』에서 조사된 집성촌으로 기록된 14개 마을 중 궐동 연안김씨가 30여 호 세대수

                  를 이루며 세거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제9절    수청동 합천이씨



                    수청동 합천이씨(陜川 李氏) 시조는 이개(李開)로 신라 때 강양군(江陽君)에 봉해졌고 고려가 건국
                  되자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절의를 지켜 태조 왕건의 부름을 거역하여 가수현장(嘉樹縣長)으로 강등

                  되었다가 후에 합천호장으로 옮겼다. 그는 최치원의 문인으로 유학 진흥에 힘써 강양군에 봉해졌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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