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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처하자 이를 막으려 노력하기도 했다. 이로 인해 제주도로 유배 가기도 했다. 국권 피탈 이후 일제
                  에게 후작(侯爵)을 받았으며, 거금의 매국 공채를 받았고, 조선총독부 중추원 고문이 되었다. 1918년

                  에 조선식산은행(朝鮮殖産銀行) 이사에 취임하였다.
                    3·1운동이 일어난 뒤 일제의 문화통치에 순응하여 유민회·동광회·조선구락부·민우회 등 단체

                  와 관계를 맺고 1920년 동아일보사 초대 사장에 취임하기도 하였다. 그는 1926년 이완용의 뒤를 이
                  어 중추원의장, 1932년 일본귀족원의원을 지냈으며, 1939년 중추원부의장 재직 중 죽었다. 저서에

                  『사화기략(使和記略1882)』이 있다.
                    박영효의 친일 매국 활동은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제2조 제

                  7·8·9·17·18·19호에 해당하는 친일반민족행위로 규정되어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보고서』
                  Ⅳ-6: 친일반민족행위자 결정이유서(pp.551∼662)에 관련 행적이 상세하게 채록되었다.

                    한편 박영효의 별장터는 현재 오산시 은계동 46번지로 금오산 밑(별장 자리에 유림각호텔이 들어
                  섰다가 모 건설회사의 직원훈련소가 되었었으며, 현재는 연립주택이 들어서 있다)에 있었다. 박영효

                  가 오산에 별장을 지은 연대나 관계 등에 관한 기록은 전혀 찾을 수 없으나, 오산의 많은 사람들이 증
                  언하는 것으로 미루어 오산 은계동에 그의 별장이 있었던 것은 확실하다. 또한 현재 오산시 수청동에

                  있는 화성초등학교 주변의 땅이름이 박동(朴洞)인데 이것 역시 이 일대가 박영효가 소유하고 있었던
                  과수원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참고문헌


                  대한계년사(大韓季年史), 매천야록(梅泉野錄), 사화기략(使和記略), 수신사기록(修信使記錄), 친일반민족행위진상
                  규명 보고서(Ⅳ-6: 친일반민족행위자 결정이유서,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현대문화사, 2009), 친일인명사
                  전2(민족문제연구소, 2009), 오산시사 2009.





                  13. 배명숙(裵明淑)


                  1965.9.12.(음)~2016.9.29.
                                                                       본관은 성주(星州), 충남 예산 출생,

                                                                     시인, 시낭송가로 기존의 시낭송을 공연
                                                                     예술의 새로운 장르로 발전시킨 예술가
      오산시사                                                           이다.

                                                                       여고시절 문학소녀였던 선생은 2000

      제                                                              년대 들어 본격적인 문학활동을 시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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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                                                              다. 오산여류문학회 활동을 하며 회장을
                                                                     역임했고, 시문학회 활동에도 적극적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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