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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변사정(邊士貞)                                                                                   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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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29년(중종 24) ∼ 1596년(선조 29)
                    본관은 장연(長淵). 자는 중간(仲幹), 호는 도탄(桃灘). 이항(李恒)의 문하에서 수업하였다. 1583년

                  학행(學行)으로 천거되어 경기전참봉이 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남원에서 2,000여 명의                                       · 민속
                  의병을 모집, 정염(丁焰)·양사형(楊士衡) 등에 의하여 의병장으로 추대되었다.                                                     · 경기도당굿과

                    체찰사 정철(鄭澈)이 비장(裨將) 이잠(李潛)을 보내어 변사정의 부장이 되게 하였다. 그때 순찰사
                  권율(權慄)이 오산 독산성(禿山城)에서 구원을 청하자 의병장 임희진(任希進)과 함께 달려와 적의 배

                  후를 공격하여 이를 구출하였다. 또한 정철의 권유로 호남을 지키기 위하여 옥천으로 내려와 상수·                                             경기재인청
                  선산 등지에 주둔하고 황길·창원·함안·성주·대구 등지에서 적을 무찔렀다.

                    1593년 제2차 진주성전투에서 재외운량장에 추대되어 산음에 가서 병곡 수백 석을 구하여 겨우 진                                         /  성씨
                  주성에 운반하였으나 곧 성이 함락되었다. 선조에게 중흥책(中興策)을 상소하기도 하였으며, 1595년

                  에는 첨정으로 승진되었으나 취임하지 않았다. 정유재란 때 남원성이 함락되자 정염이 “변사정이 있                                           · 인물
                  었다면 적이 어찌 여기까지 이르렀겠는가?”라고 하였다 한다. 사헌부장령에 추증되고, 선무원종공

                  신(宣武原從功臣)에 녹훈되었으며, 전라북도 운봉(雲峰)의 용암서원(龍巖書院)에 제향되었다.
                    저서로는 『도탄집(桃灘集)』이 남아 있다.



                  참고문헌

                  선조실록(宣祖實錄), 호보(號譜), 호남절의록(湖南節義錄), 오산학연구5집.





                  16. 변응성(邊應星)


                  1552년(명종 7) ~ 1616년(광해군 8)
                                                     본관은 원주(原州). 자는 기중(機仲). 아버지는 공조판서 겸

                                                    도총관 변협(邊恊)이다. 1579년(선조 12) 무과에 급제하였고,
                                                    강계부사를 역임한 끝에 아버지의 상을 당하여 물러가 있었

                                                    으나,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경주부윤(慶州府尹)에 임
                                                    명되었다. 그러나 일본군이 먼저 경주를 점령하여 부임하지

                                                    못하고, 이듬해 유성룡(柳成龍)의 천거로 경기방어사가 되었
                                                    다. 이천부사(利川府使)가 되어서는 여주목사 원호(元豪)와

                                                    협력하여 남한강에서 적을 무찔렀다. 1594년 광주·이천·
                                                    양주의 산간에 출몰하는 토적(土賊)을 토벌하였으며, 한강

                                                    상류 용진(龍津)에 승군을 동원하여 목책(木柵)을 구축하여
                                                    병졸을 훈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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