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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9월 29일 오후 4시경 내삼미동에서 금연지도 활동 중에 후진하는 차량에 치여 숨지고 말았
다. 이때가 경기시낭송협회 창립 10주년이 되는 해였다. 그리고 시낭송을 공연예술의 새로운 장르로
발전시키기 위해 동분서주한 지 10년째 되는 해였다.
유족으로 남편과 일남일녀를 남겼다.
참고문헌
오산시민신문, 화성오산신문, 물향기신문.
14. 백명흠(白明欽)
1909년 ~ 1936년
경기도 수원 출생. 본관은 수원(水原)이다.
1935년 서울 종로 중앙의원(中央醫阮)을 구
입하기 위해 자금 모집에 힘을 썼으며, 동지
들과 함께 노동조합을 결성하였다.
백명흠은 1927년 동생 백봉흠(白奉欽) 등 4
명과 함께 반일단체를 조직하기 위해 유인물
을 제작하여 공장이 밀집되어 있는 인천(仁
川)지역에 집중적으로 살포하였다. 그는 이
러한 활동으로 일경의 요주의 감시대상 인물
로 지목되어 제대로 활동을 못하다가 1935년
2월 서울로 잠입하였다. 서울에 온 그는 서울청년회 회원인 안중의 아들 안승락(安承樂)을 만나 그에
게 돈을 전달했고, 같은 해 5월 초순경 서울 종로 3가에 있는 중앙병원을 구입하여 의사 권모(權某)씨
로 하여금 병원을 운영하게 하고 자금조달에 힘썼다.
한편 그는 동지들을 규합하여 태창직물(太昌織物)·동수제사(同水製絲)·암촌제사(岩村製絲) 등
각 공장에 취업시켜 이들을 중심으로 적색노동조합(赤色勞動組合) 결성을 추진하였으나 일경에 피
체되고 말았다. 그는 일경들의 악독한 고문으로 인해 빈사 상태로 1936년 7월 6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석방되었으나, 그날 오후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6년에 건국훈장 애족장
오산시사
을 추서하였다.
한편 후손들이 2007년 오산시 내삼미동 산 71번지 일대에 백씨문중 납골묘를 만들고 그 옆 비석에
제 선생의 생애를 새겨 후세에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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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318 朝鮮日報(1935. 12. 17), 韓民族獨立運動史資料集(國史編纂委員會) 別集 第4輯 269面, 독립유공자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