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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정속(化民正俗 : 백성들을 교화하고 풍속을 바로잡음)에 힘써 많은 명현과 효자·열녀를 정표(情 325
表)하였다. 청송 심씨가 오산에 뿌리를 내리고 살기 시작한 입향조(入鄕祖)가 바로 심성희이며, 묘는 구비전승
오산시 원동 산 42번지에 있다.
참고문헌 · 민속 · 경기도당굿과
肅宗實錄, 英祖實錄, 國朝榜目, 雷淵集.
경기재인청
24. 심우신(沈友信)
1544년(중종 39) ~ 1593년(선조 26) / 성씨
조선 중기의 무신으로 본관은 청송(靑松)이다. 자는 공택(公擇)이며, 영의정 회(澮)의 5대손이고, 아
버지는 곡산부사 수(鐩)이며, 서인의 영수였던 의겸(義謙)이 6촌 형이다. · 인물
1577년(선조 10) 무과에 합격, 선전관을 역임하고 군기시첨정(軍器寺僉正)에 이르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가재를 정리하여 의병을 모집, 오산 독산성에서 적병의 진격을 막았다. 창의사(倡義使) 김
천일(金千鎰)을 만나 사생을 같이 하기로 맹세하고, 함께 진주성으로 들어가 힘을 합쳐 이를 수호하
였다. 성이 함락되어 김천일 부자가 먼저 자결하자, 배수진을 치고 싸우다 화살이 다하자 북향재배하
고 남강에 투신, 자살하였다. 뒤에 병조참판에 추증되었고, 전라도 영광의 장천사(長川祠)에 배향되
었다.
참고문헌
宣祖實錄, 韓國系行譜.
25. 심주택(沈周澤)
1867년(고종 4) 4월 19일 ~ 1945년 1월 23일
대한제국기 문신으로 본관은 청송(靑松)이다. 자는 경존(景尊), 호는 오정(梧庭)이며, 고려 때 문림
강위 위시승(文林郞偉 尉寺丞)인 홍부(洪孚)의 22세 손으로 오산시 원동 당촌(당시는 수원군 청호면
당촌 또는 당말)에서 근암공(謹菴公) 의윤(宜允)의 2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891년(고종 28) 2월 8일 세자궁 탄일을 맞이하여 치루어진 증광시에 응시하여 병과에 합격하였다.
이때 시험은 영의정 심순택을 위시한 시관들이 참석한 가운데 옥당 고시 편전에서 치루어졌다. 과거
에 합격한 선생은 1891년(고종 28) 7월 22일 통훈대부로서 홍문관 부교리 지제교 겸 경연시독관 춘추
관 기주관에 임명되었고, 같은 해 10월 사간원 정언에 임명되었다.
1892년(고종 29) 5월에는 다시 홍문관 부수찬 지제교 겸 경연검토관 춘추관 기사관에 임명되었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