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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보자께서는 이러한 일이 도깨비가 자신의 담력을 시험을 한 것이었다고 생각하였다. “내가 기력 47
이 센지 안센지 그거를 시험 해 본 것이었다.”는 것이다. 이렇듯 구전되는 도깨비설화는 반드시 도깨 구비전승
비에게 이겨야지 지면 죽음에 이르거나 병이 난다고 생각하고 있다.
(12) 브아지의 도깨비불 · 민속 · 경기도당굿과
오산천변을 중심으로 방고지, 브아지, 원장네 애총 등에 나타났다는 도깨비불 이야기다.
장밭에 물을 대려고 하면 브아지로 나간다. 그러면 원장네 애총을 지나게 되는데 애들이 재잘거리 경기재인청
는 것 같은 소리가 들린다. 그러면 소름이 쫙 끼치는데 가만히 들으면 애들 소리가 났다.
그 곳을 지나면 제방둑을 따라 가게 되는데 거기에 물레방앗간이 있었다. 그러면 도깨비불이 솜방
망이에서 나오는 것처럼 쭉 나온다. 그러다가 꺼지고 또 쭉 나오고 그랬다. / 성씨
그때는 오산천을 막아서 그 물이 이 브아지로 들어오는 때였다. 브아지의 끝이 방고지인데 거기에 · 인물
가도 그냥 도깨비불이 솜방망이같이 해서 쫙 오더니 꺼지곤 하였다. 그래 어른들이 사람이 불을 키고
있으면 도깨비들이 오지 못한다고 한 소리를 기억해서 불을 켜들면 도깨비불이 나타나지 못했다.
(13) 상주 남대문 용의 조화
옛날 경상도 상주에 남대문이 있었다. 일한 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철로를 놓기 위해 남대문을 철거
하려했다. 먼저 가장 높은 위치인 용마루 위의 기와를 제치려 하였다. 그러나 그 높은 지붕 위로 올라
가 기와를 제치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일본인들은 “남대문 용마루의 기와 한 장을 제치면 얼마를 주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남대문의
높이에 눌려 누구도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 가운데 어떤 사람이 나타나 “언제 내가 하겠다.”고
하면 여지없이 바람이 불고, 날이 흐렸다. 그러니 더욱 나설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니 공사는 진척을 보이지 못했다. 일본인들은 공사를 강행하기 위해 한 사람
을 내세웠다. 억지로 올라가게 된 사람이 용마루에 올라가서 기와를 제치자마자 안개가 일어 남대문
을 휩싸더니 용이 승천을 하였다.
사람들은 용이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긴 것으로 믿었다고 전하며 지금 서울의 남대문 같은 것도 원
상태를 유지해야지 해를 입히면 조화가 일어 말썽이 생긴다는 것이다.
오산에 전하는 도깨비 설화는 도깨비의 존재와 도깨비 퇴치법, 도깨비의 특성을 다루고 있다. 도깨
비의 이야기는 전국적인 분포를 나타내는 것으로 도깨비에 대한 한국인의 인식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설화임은 자명하다. 그런데 오산에 전하는 도깨비의 이야기에서 도깨비와 허깨비를 어떻게 구별할
수 있는지와 도깨비를 퇴치하는 방법이 채록되었다는 점은 매우 의미 있는 자료가 아닐 수 없다. 다
시 말하여 흔하지 않은 자료가 오산지역에서 전승되고 있음을 증명하여 주는 것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