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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에 실린 「본사축문(本祠祝文)」에는 주관자를 ‘후학모(後學某)’로 표현하고 있다.
                    한편 『화성궐리지』 「영정」 항목에는 1917년에 연성부(衍聖府)의 대본 2본을 가져와 1본을 정전에 걸

                  고 1본은 김천수가 기증한 소본 1본과 함께 궤에 봉안하였다고 기록되어있어 모두 3본이 소장되어 있
                  었음을 알 수 있다.

                    궐리사는 외삼문에 성묘(聖廟)라는 현판이 걸려 있고, 계단 입구에 하마비가 세워져 있다. 배치는
                  본 건물에 공자의 영정이 모셔져 있고, 사당 전면 좌측에 성적도를 봉안한 장각이 있다. 1993년 7월

                  중국 산동성 곡부현에서 기증한 공자의 석조 성상이 경내에 설치되어 있다. 석상을 모신 기단부에는
                  공자가 태어난 때의 모습을 조각으로 새기고 안자(顔子), 맹자(孟子) 등 성인들이 공자를 모시고 서

                  있는 모습이 조각되어 있다.


                  8. 궐리사 성적도(闕里祠 聖蹟圖)


                    오산시 궐리사에 보관되어 있는 성적도 목판은 공자의 생애(生涯)를 그림으로 나타낸 것으로, 공자

                  의 76대손인 공재헌(孔在憲)이 궐리사 도약장 조병식(都約長 趙秉式), 송병선(宋秉璿) 등과 힘을 합쳐
                  1904년 중국 산동성에 있는 성적도를 가져와 이를 저본으로 하여 새긴 것이다. 1974년 9월 26일 경
                  기도 유형문화재 제62호로 지정되었다.

                    목판은 피나무로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전체 수량은 60장이다. 판면의 그림은 전면도(全

                  面圖)로 구성되어 있고, 빈 공간에 화제(畵題)와 제찬(題贊)이 수록되었다. 한 장의 크기는 세로 약 32
                  ㎝, 가로 약 60㎝, 두께 약 4㎝ 내외이다. 글씨의 자경은 1cm 정도이고 정교하지 못하나 판장에 조각
                  된 공자의 성적도는 비교적 섬세한 편이다. 우리나라에 있는 유일한 공자의 성적도라는 점이 인정되

                  어 경기도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이 목판을 이용하여 책을 여러 번 찍어낸 것으로 보이는데, 나라의

                  운명이 기울어가는 상황에서 공자의 일생과 유학을 널리 알리기 위한 교재로서 간행된 것으로 생각
                  된다.


                  9. 내삼미동 유적(內三美洞 遺蹟) ①


                    경기문화재단 경기문화재연구원이 2009~2010년에 걸쳐 실시한 수청동 624번지 일원 오산 세교

                  택지개발사업 부지에 대한 구제발굴조사를 통해 확인된 유적이다. 필봉산(筆峰山, 해발 144m)의 주
                  능선이 북쪽으로 뻗어 있는데, 능선 중단에서 서쪽으로 뻗은 가지능선 상에 위치한다. 조사 결과 청

                  동기~조선시대에 이르는 유구 198기와 약 664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오산시사
                    조선시대 유구는 집터 3기, 움무덤 9기, 도랑 2기 등이 확인되었다. 집터는 대부분 파괴되어 정확

                  한 양상을 알기 어려우나 내부에서 구들시설이 설치된 일반가옥이라 생각된다. 무덤은 9기 중 4기에
      제           서 조선시대 전기 특징인 일단굴광+충전토의 형태를 보이며, 다른 5기는 내부 시설이 확인되지 않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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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           다. 출토유물은 빈약한 편이나 2호 무덤 벽감에서 출토된 백자류 등을 보았을 때 대략 15~16세기경
                  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외에 목탄가마, 삼가마 등이 확인되었으나, 유물이 출토되지 않아 정

    426           확한 조성시점은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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