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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각 부재를 뜯어갔다고 한다. 그 이후 황구지천 호안공사를 할 때 시공 담당자가 교각석을 무단으로 433
채취해 갔다고 한다. 어째든 발굴조사를 통해 기록으로만 전해지던 세람교의 정확한 위치를 규명한 역사
점과 이로 인해 중세 교통로 연구의 기초자료를 확보하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 유적 · 유물
그림 7. 세람교지 전경(中央文化財硏究院 2008)
22. 수청동 유적(水淸洞 遺蹟)
경기문화재단 기전문화재연구원(현 경기문화재연구원)이 2004년에 실시한 수청동 569번지 일원
의 아파트 건설부지에 대한 구제발굴조사에서 확인되었다. 해발 66m 정도의 낮은 잔구성 구릉의 남
사면에 해당하며, 현재 우미아파트가 들어서 있다. 조사 결과 원삼국~조선시대에 이르는 유구 9기와
약 236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조선시대 유구는 움무덤 1기가 확인되었다. 길이 2.4m, 너비 0.9m, 깊이 약 1.2m 정도이며 2단으
로 굴착하고 목관을 안치하였다. 내부에서 남성으로 추정되는 인골 1구가 확인되었으나 유물이 출토
되지 않아 정확한 조성시점을 알 수 없다.
23. 심공유 묘(沈公猷 墓)와 묘표(墓表)
심공유(1724~1788년)는 심현희의 계자(繼子)로, 생부는 심봉휘(沈鳳輝)의 장남 심성희(沈聖希,
1684~1747년)이다. 광주목사를 역임하였으며, 묘소는 오산시 원동 산 42-1번지의 북쪽 능선 중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