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1 - 관악부 100년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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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 U W O
총론
입생이 1000여명이었다. 대학 과별 정원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법정대학 법학과 320(80), 행정학과 320(80), 상과대학 상학과 320(80), 경영학과 320(80), 문
리과대학 문학부 국문학과 160(40), 영문학과 160(40), 철학과 160(40), 사학과 240(60). 교육심
리학과 160(40). 이학부 수학과 160(40), 물리학과 160(40), 화학과160(40), 생물학과 160(40).
농과대학 농학과과 160(40), 임학과 160(40), 농예화학과 160(40), 농업경제학과 160(40). 정경
대학 정치외교학과 320(80), 경제학과 320(80), 총계 4040(1010) *괄호 내는 입학 정원 (高麗大
學校 六十年誌 p, 323)
그리고 여학생에게는 입학 특전을 주었는데, 해방이후 여자로서 본교에 입학 하려고 하는 학
생이 많았으나 남자와 같은 조건으로 대학입시를 치르기 때문에 여자가 많이 응시하지 아니하
였다. 이때에 이르러 여자에게 특전을 베풀기로 하고 모집정원 10% 이내의 여학생을 선발하는
동시에 정규 입학시험에 있어서도 여자는 수학(數學)대신 가정(家政)을 보고 커트라인도 남자
보다 낮추었다. 그 결과 여학생이 많이 입학하게 되어 1958년에는 전교 여학생 수가 200여명에
달하였으므로 여학생을 위하여 금난실(金蘭室)을 마련하였다.(高麗大學校 六十年誌 p, 336)
위와 같이 여학생들의 수가 증가 하면서 합창(合唱)부도 활기를 띠게 되었다.
학교는 정상적인 발전을 거듭하면서 학벌이 낮은 교원의 사직(辭職)을 종용하여 자연히 창설
로 부터 2년간 고생만 한 손중문 코치도 그만두고 대신 1957년 이흥열(李興烈)선생이 객원교
수로 부임하였으나 선생은 피아노와 작곡이 전공이어서 합창부와 음악감상실에는 큰 도움을
주었지만 관악부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흥렬교수도 1963년에는 숙대 음대 학장으로 발
령을 받아 고려대와는 결별하였다.
이후로는 교수 중 관악에 경험이 있던 경영대 김해천 교수(51 경영 경동고 Cla)가 지도교수로
임명되어 10여 년간 관계하면서 학교 음악의 전반적인 잡무는 필자가 담당하였다.
강당이 준공되니 천막도 철거되어 연습실이 없어 전전하다가 학생과의 호의로 방과 후에는
간이(簡易) 여학생휴게실(정문에서 우측으로 올라오면 호상이 있고, 그 옆에 휴게실이 있었슴)을 사용
하라는 허락을 받고 이곳에서 합주 연습을 하였다. 그러나 이곳도 출입이 제한되어 어려움을
겪고 있을 시기였는데, 필자가 1959년 봄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박물관에 출근하게 되어 그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