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40 - (사회돋보기)노규수 컬럼집-본문(최종)_Neat
P. 140

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나에게 세계주의에 반하는 민족주의라고 어깃장을 놓는 친구가 있었다.

               나는 정말 눈물이 났다. 일본 식민지시대와 해방 전후의 좌우 대결시대에 프롤
               레타리아 계급투쟁을 벌인 좌익계열에서 ‘민족’보다 ‘계급’이 우선해야 한다며,

               홍익인간 사상에 대해 민족주의라고 비판을 한 것과 같은 논리였다.

                 하지만 해방 이후 기독교 부흥에 앞장섰던 이승만 정권에서 홍익인간을 교육

               이념으로 제시한 안호상 박사(문교부장관) 등 주도세력들은 대부분 사랑과 평화를
               강조했던 기독교인들이었다. 민족정신의 회복으로 홍익인간 국민운동을 펼친

               주요 인사 중의 한 사람인 함석헌 선생도 기독교인이었다.

                 내가 2001년부터 본격적인 시민운동을 벌일 때, 가장 나를 화나게 하는 때가

               바로 “홍익인간 사상이 자칫 지나친 민족주의로 흐를 경우 ‘글로벌 시대 세계시

               민으로서의 자질’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우려를 나타내는 경우다. 정말 기기
               찰 노릇이다. 지나친 민족주의라니…, 그리고 세계시민이라니…? 반만년 역사

               에서 우리 민족이 언제 제대로 된 민족주의 한 번 외쳐본 적이 있는가?

                 그들이 우려하는 지나친 민족주의라는 것은, 우리 민족이 타민족에 대한 우

               월의식에 젖다 못해 타민족에 대해 배타적 인종차별로 나타나고, 그것이 더 악
               화돼 그들에 대한 테러나 집단폭력(히틀러의 경우는 집단학살이겠지만)의 형태

               로 발전하는 경우에나 붙일 수 있는 말일 것이다. 우리 민족은 오히려 그 반대로

               살아왔다. 타민족이 추구한 민족주의와 세계주의의 희생양이 돼, 그들이 그들의

               조상들에게 올리는 민족주의의 제물로 바쳐졌던 것이다.

                 그러다 일본이 결국 조선을 강제 합병, 전국에 그들의 천황과 신을 모시는 신
               사를 세워 황국신민의 예를 갖춰 참배케 하고, 우리 민족을 식민지 B급 열등 인





            140 노규수의 사회 돋보기
   135   136   137   138   139   140   141   142   143   144   1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