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73 - (사회돋보기)노규수 컬럼집-본문(최종)_Ne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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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이었다.

                  나는 그 말에 큰 박수를 쳤다. 함께 살면서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하라’는 홍익

                인간이라는 한국의 전통사상을 잠식해버린 권위주의적 유교문화에 대해 직격
                탄을 날려주었기 때문이었다. 김경일은 공자의 도덕은 백성을 위한 인본주의 도

                덕이 아닌, 군주정치의 도덕이었고 기득권자를 위한 도덕이라고 비판했다.

                  고려 때까지 이어온 홍익인간 정신이 조선조 500년간 사라져야 했던 것이 바

                로 공자의 논리 때문이었고, 그 논리가 절대적 권위에 복종케 하는 수직윤리이
                기 때문이었다. 당시 전체 인구의 5%에 불과한 소수의 양반들이 95%의 백성을

                하층민으로 거느리며 강요했던 충(忠)과 효(孝)의 유교사상은 그들에게 만사 편안

                한 지배이데올로기로 활용할 수 있었다.

                  공자의 본래 뜻이 어떠하든, 결국 공자의 도덕을 받아들인 한국의 유교문화는

                정치적 기만과 위선, 남성 우월 의식과 여성 착취, 젊음과 창의성의 말살, 그리고
                양반중심 서열문화와 권위주의적 헛기침이 가득할 수밖에 없다.

                  이것들은 사람이 살아 숨 쉬는 삶의 공간에 꼭 필요한 투명성과 평등, 창의력,

                생명력과는 너무도 동떨어진 가치라는 것이 김경일의 주장이었다. 그는 공자의

                유교가 실용적 학문과 경제적 활동을 천시함으로써 한국의 근대화를 뒤처지게
                했다고 지적했다. 소수 엘리트주의와 기득권층의 보수대결집의 배후에는 유교

                의 사농공상(士農工商)적 신분질서 관념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당시 외국계 다단계 기업의 함정에 빠져 큰 피해를 입었던 나는 우리나라가

                외세에 의한 IMF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정부 관료들이 가장 먼저 공자에서 벗어

                나 마쓰시타 고노스케를 닮아야 한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실제 성공
                할 때까지 끊임없이 매진했던 사람이다. 그는 집안이 망해 9살 때부터 남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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