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86 - (사회돋보기)노규수 컬럼집-본문(최종)_Ne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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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황폐하 만세를 외쳤고, 일본식 이름으로 창씨개명을 했으며, 일본의 신을 모

               신 신사를 참배했기 때문에 일제의 정신적 잔재를 하루아침에 지워버린다는 것

               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따라서 국민들의 시선과 의식을 한 곳으로 집중시킬 수 있는 철학과 사상이

               필요했다. 그때도 남과 북의 주도세력들은 정신적인 주권회복에 있어서도 서로

               다른 길을 선택했다. 북한은 철저한 지배 이데올로기를 마르크스의 사회주의에

               서 찾고자 했다. 따라서 지주와 자본가는 프롤레타리아 무산자계급에 대한 착취
               자로 치부됐다. 그들은 곧 친일파나 매국노와 다름없었다. 그러다 보니 일본의

               자본침략에 저항해 자생적으로 부를 형성한 민족 자본가들마저 ‘반민족 반동세

               력’으로 몰리는 신세가 됐다.

                 당시 북한의 김일성집단은 남한의 미군정 체제를 비판하며 스스로 민족자주

               를 부르짖고 있었다. 따라서 그들은 서양의 마르크스주의 대신 우리 고유의 민
               족 사상을 국가의 통치이념으로 채택해야 앞뒤가 맞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마르크스를 추종해 인류정신사를 지배해온 인간과 신의 기본관계마저도 뒤바

               꾸어 버렸다. 북한이 수용한 마르크스주의에서는 하느님이 인간의 삶을 주관하

               는 것이 결코 아니었다. 인간이 하느님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인간도 하느님이
               될 수 있다는 뜻으로 들리는 대목이다.

                 박부권(철학박사)이 쓴 ‘교육이념과 홍익인간’(한국교육개발원. 교육개발66. 1990)에 따

               르면 마르크스는 “이 세상에 인간과 자연을 제외하고 존재하는 것이란 없다. 인

               간의 종교적 환상이 만들어낸 하나님은 우리 인간 자신의 핵심적 속성을 환상적

               으로 반영하고 있는 반영물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는데, 북한은 이를 철저하게
               신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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