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6 - 부안이야기1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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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소설 같아서 흥미와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임기홍은 하서면 금강동에서 태어났으며 중류가정의 유학자 임
            우인(林愚仁)의 둘째 아들이다. 기골이 장대하고 민첩하였다는데 변산에서 의병활동을 할 때 청호의 고제신 의
            병과 변산을 주름잡고 다녔다고 한다. 이때 ‘왔다 갔다 고문경, 날아가는 임기홍’이라는 유행어가 은밀하게 나돌

            았다고 한다. 문경(文京)은 고제신의 자(字)다. 임기홍은 잠복한 일본 경찰과 맞닥뜨려 육박전을 벌이다 때려눕
            히고 탈출하였으나 그 과정에서 왜경의 칼에 한쪽 눈을 찔려 평생 애꾸눈의 장애자로 살다 1941년 경 서거하셨
            다. 우리 형제들은 이 할아버지를 ‘산중 하나씨’라고 불렀으며 경이로운 눈으로 바라보곤 하였다.
              임기홍이 변산에서 의병으로 은거하고 있을 때, 전남 함평 나산 사람으로 선산 김씨 김조락과 같이 지냈는데

            이 분은 함평, 영광 지역을 주름잡으며 부자들을 윽박질러 많은 군자금을 조달하였으므로 고향에 발붙여 살 수
            가 없었다. 김조락은 아들 용호와 손자 홍두를 임기홍에게 맡기고 상서면 청림 노적매의 진사 박필환(朴弼桓),
            김병선(金炳善)과 더불어 만주로 탈출하였다고 하였다. 그 후 아들 용호는 변산의 회양골에서 숯막을 짓고 숯을
            구워먹고 살다 병사하였다 하며, 손자 홍두는 천애의 고아가 되었는데 나이 30이 되도록 장가도 못가고 있어 임

            기홍이 자신의 딸과 혼인시켰다. 그는 회양골에 계속 살았으며 말년에는 고부 마르등으로 이거하여 살 때 내가
            두어 번 뵌 일이 있다. 내겐 외사촌 이숙이 된다. 이상의 이야기는 임기홍의 손자 임성수(林成洙) 외종형(92세)으
            로부터 들은 이야기이다.












































            부안의병들의 거류일본인 공격 사실을 밝히며 의병이 모이고 흩어짐을 알 수 없다는 내용을 보도한 1906년 「대한매일신보」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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