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8 - 부안이야기1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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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으로 보인다. 이들이 만주로 탈출한 시기가 1918~19년경으로 추정되는데 박필환이나 김조락은 이미 노령에
접어든 시기였다.
박진사의 아들 박기철은 아버지의 엄격한 정훈(庭訓)을 받들지 못하고 일본 경찰들에게 시달리며 불량한 생활
로 떠돌았다고 하며 한때 통영에서 경찰 노릇도 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손자 박문채(朴文彩)는 2000년대 초까지
나와 함께 국사편찬위원회의 사료조사위원으로 활동한 친구다. 그는 가끔 얼굴도 못 본 할아버지를 그리워하며
만주에서 행적이라도 알았으면 하며 아쉬워하였고 할아버지의 유품인 ‘진사교지’와 서책들을 아끼곤 하였으나
수년 전 암으로 세상을 떠나버렸다.
내가 지금까지 부안의 향토사를 공부하며 조사했던 바, 변산을 중심으로 한 의병들의 이야기는 이것이 전부다.
많은 의병들의 비화가 묻혀있을 터이지만 어디에 잠겨있는지 알 길이 없어 안타깝다. 백여 년이 지난 오늘, 그 거
룩한 자취와 비화들이 가뭇없이 묻혀 소멸되어버린다면 얼마나 죄스럽고 민망한 일인가 내 스스로도 부끄럽다.
그러나 지금 청림의 의병 김병선이 1918~19년경 만주로 탈출하여 홍범도장군 휘하에서 항일투쟁을 하면서 국
내에 잠입, 왜경과 싸우다가 순절, 199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는 소식은 자랑스럽기 그지없다. 이
는 변산 의병들의 맥이 홍범도장군의 독립군에 이어졌음을 의미한다. 어찌 변산의 의병들의 전적이 김병선 한
사람 뿐이랴. 끝내 밝혀지지 않고 묻혀버렸을 사연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박필환이 살았던 청림리 노적마을 전경
108 부안이야기·2018년/겨울/통권제1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