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15 - 부안이야기1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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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조를 변치 않는 군자의 자세를 본받고 있는 것입니다. 주체 확립에의 의지가 담겨있는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번에는 65쪽의 「꽂힌 연꽃을 보고」란 작품을 읽어보겠습니다.








                                      옥병에 맑은 물 담겨
                                      연꽃 한 가지 솟아 있네.
                                      그윽한 향기 홀연 집 안에 가득하니
                                      백화가 온통 무색하게 되었구나.
                                      빼어난 아름다움 저만 혼자 알고 있으니
                                      화사한 자태 석양에 벌써 시드는구나.

                                      나 혼자 일어나 한번 향기 맡아보고 탄식하니
                                      영근(靈根)이 단절되는 걸 어찌 차마 보고 있으랴.
                                      바라건대 연못을 만경이나 넓게 파
                                      너를 잘 가꾸어 지금처럼 꽃이 만발하기 바라노라.
                                      개인 날 난간에 앉아 좋은 풍광 감상하고
                                      저문 해 가을 연못에서 연밥도 따리로다.








                               위 작품은 선생의 나이 32세인 1653년 ‘계사(癸巳)’ 여름에 창작한 것입니다. 내용은 크게 전후의
                             두 단락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제1구부터 제6구까지는 꽃병에 꽂아 놓은 연꽃에 대한 간략한 묘사

                             인데, 온갖 꽃들이 무색할 정도로 색깔과 향기가 빼어나지만 석양 무렵이 되자 벌써 시들어가고 있
                             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제7구부터 제12구까지는 꽃병의 연꽃에 대한 안타까움의 토로인데, 연꽃의
                             천성이 마음껏 발현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다는 선생의 바람을 피력하였습니다.
                               연꽃에게 있어 제자리는 꽃병이 아니라 연못입니다. 제자리가 아닌 꽃병에서 비록 일시적으로 아

                             름다운 색깔을 뽐내고 향기를 풍긴다 하더라도 저녁이면 시들고 맙니다. 그런 연꽃을 보고 선생은
                             무한한 동정을 느끼면서 넓은 연못에 옮겨 심어 제자리를 얻도록 해주고 싶어 한 것입니다.
                               반계 선생은 조선의 잘못된 제도를 근본적으로 개혁하여 백성들이 제자리를 얻도록 함으로써 옛
                             성왕들이 구현했던 이상적인 ‘왕정(王政)’을 회복하고자 하였습니다. 이러한 선생의 사회적 실천 의

                             지를 위의 작품을 통해 느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미 제자리를 얻고 있는 대상을 바라볼 때는 선생의 정서가 어떠하였는지 109쪽의 「봄
                             날에 우연히 읊다」라는 작품을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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