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16 - 부안이야기1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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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풍 불어 간밤에 비 내리자
                     온갖 꽃은 저마다 고움을 다투네.
                     복사꽃은 꽃망울이 터지려 하고
                     살구꽃은 가지에 가득 피었구나.
                     푸른 가지 버들솜이 날리고
                     갯버들 자라서 못을 덮었구나.
                     새 소리 저절로 좋은 소리요
                     구름이 걷히자 햇살이 맑아라.

                     물물이 다 제 성질을 이루니
                     저마다 생긴 대로 즐거워하는 듯.
                     여기 이 사람 꿈에서 막 깨어
                     동쪽 시내 언덕을 거니는데.
                     기꺼운 마음 물아(物我)를 잊고
                     지팡이 짚고 발길 닿는 대로 걷노라.







              위 작품은 선생의 나이 36세인 1657년 ‘정유(丁酉)’에 지은 것으로, 이때는 부안 우반동으로 내려

            온 지 햇수로 4년째가 되어가는 봄이었습니다.
              내용은 크게 두 부분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제1구부터 제10구까지는 우반동의 주변 경물들이
            모두 제자리를 얻어 기뻐하는 모습을 표현하였고, 제11구부터 제14구까지는 그 속에서 생활하는 선

            생이 느끼는 희열의 정취를 토로하였습니다. 정치 세계와 멀리 떨어진 우반동에서 선생이 도달한 물
            아일체의 경지를 아름답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우반동을 에워싸고 있는 복사꽃, 살구꽃, 버드나무, 창포, 새, 햇살 등등 모든 경물들이 본성을 마
            음껏 발휘하면서 기뻐하고 있습니다. 선생 또한 그들과 하나가 되어 물아의 구분을 잊은 채 발길 닿
            는 대로 걸으면서 함께 기뻐하고 있습니다. 사회적 실천이 완수되었을 때 느끼는 성취감의 한 모습

            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번에는 163쪽의 「성순경에게」라는 작품을 읽어보겠습니다.





                     나무하고 낚시질하며 가난도 편안한데
                     다섯 이랑 농사지으니 은둔함과 다르구나.
                     비 온 뒤 산 자태 어디나 곱고






        116  부안이야기·2018년/겨울/통권제1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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