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6 - 부안이야기1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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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빤대기를 사정없이 후려치는데 눈구녕에서 노란색 큰 화젯거리가 되었다.
별이 번쩍번쩍했다. 직사박사 두들겨 맞고 이날 새벽 집에 돌아와서 소식을 들으니, 사사끼 외아들 거세
드디어 절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사건까지 일으켜 우리 집이 풍비박산이 났다. 간척답
한 섬지기를 팔아서 그 녀석 병원 치료비를 내놓았다
고 한다. 얼핏 생각해보면 필자가 비록 악동이었지만
해방 맞아 고향 삼간평으로 일본인들을 괴롭힌 것으로만 본다면 항일운동에 앞장
섰던 삼간평의 어린 애국투사(?)라고 불러도 손색이
싸락눈이 희끗희끗한 눈길을 검정고무신 찍짝거리 없구나 하고 혼자 웃음 짓는다.
며 내장사 아랫동네 쪽으로 걸어가는데 여기저기서
새벽닭이 울고 나도 울었다. 희미하게 먼동이 틀 무렵
사람들 목소리가 들려오는 쪽을 향하여 뛰어가 보니 수문통거리 도랑에서 고기잡이
등짐장수 어른들이었다. 하얀 입김 내뿜으며 뒤따르
는 필자를 힐끗 돌아다보며 “아니 꼭두새벽에 까까중 한국전쟁 직전이던가? 동네 친구들 여남은 명이 벌
머리 꼬맹이가 시방 어디를 가려고 우리를 따라온당 뚝밭 장두식씨네 참외 서리할 때, 이슬비가 내리는 오
가 잉?” “아저씨들 나 쪼깨 아무데나 데려다 주시기라 밤중이었다. 우리 모두는 꾀를 홀랑 벗고 참외밭에 들
우.” 어른들의 물음에, “부안 삼간평에서 일본놈의 새 어가 무조건 마구 뒹굴어 깨지는 참외를 따먹기로 했
끼 거시기 까고 도망쳐 내장사에 들어와 주지스님 입 다. 그런데 저쪽 편 밭고랑 쪽에서 “아이고 오매, 아이
에 오줌 싼 죄로 쫓겨났당께로요.” 고 아파라 아이고 나 죽는다”고 엉머구리 소리를 내지
“어허 그놈 솔찬히 아고똥헌 놈일세.” 그 장사를 따 른다. 쫓아가보니 어둠 속에서 번들거리는 동아줄과
라 정읍역 정거장에서 시커먼 쇳덩어리 기차를 타고 같은 물건을 감아쥐고 자꾸만 그것을 떼어내려고 야
경성까지 올라갔다. 료치며 친구가 나뒹굴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먹구렁
그곳 경성 역전 근처를 배회하던 중 만리동 사랑의 이가 하필이면 K군의 꾀 벗은 고추를 덥썩 물고 늘어
교회 김성녀 할머니 권사님을 만나 당달봉사라고 하 짐으로 아픈 통증을 못 이겨 악다귀 소리를 치며 울부
는 외손자와 함께 살게 되었다. 친정오매에게 시각장 짖었다. 구렁이는 떼어냈으나 귀두 일대가 찢겨져 유
애인 아들을 맡겨놓고 돈 많은 부잣집 첩실로 들어가 혈이 낭자함으로 러닝셔츠를 붕대삼아 동여매었는데
아들딸 남매를 둔 김 할머니의 딸은 가끔씩 찾아와 고 밤에 보아도 흰 셔츠가 붉은색이 되고 그 아래로 피가
급 음식도 해주고 의복도 마련해 주었다. 그럭저럭 3 계속 흘러내렸다.
년 가까이 지내던 중 8.15광복을 맞아 그렇게도 무서 이후 그가 고향 부안에서 모 기관단체장을 역임하였
웠던 일본 순사부장도 본국으로 쫓겨간 이후 그해 10 고 현재는 서울에서 노년기를 건실하게 살아가는데
월에 김 할머니를 따라 꿈에도 그리던 삼간평 부모님 자녀들도 여럿 두었다. 유소년 철부지 시절 고추 끝을
품으로 돌아왔다. 막내아들을 얼싸안고 통곡하시던 뱀에 물린 그곳 그 물건을 두 손으로 야무지게 움켜쥐
어머니의 그 모습이 지금도 눈시울을 뜨겁게 한다. 고 엉엉 울면서 펄펄 뛰던 그 친구의 그때를 생각하면
삼간평 동네 사람들이 깜짝 놀라며 수년전 계화도 지금도 쓴웃음이 터져 나오곤 한다. 초가을 삼간평 들
앞바다 물에 빠져죽은 줄로만 알았던 말썽꾸러기 ‘시 녘 물통배미 나락 논에 벼꽃이 도랑으로 흘러내릴 때
마모토 상꽁’이 해방을 맞아 살아서 돌아왔다는 것이 그 벼꽃을 먹으려고 논배미 나락 논으로 몰려드는 송
026 부안이야기·2018년/겨울/통권제1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