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1 - 부안이야기1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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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 개가 그곳 고래 누운 곳에 모여 해부가 된 고래 전쟁 3일 만에 서울을 빼앗기고 대전으로 내려온 이
내장 고기를 잘라내 갔다. 계화도 나룻배 역할로 수많 승만 정부에서는 전국 각 경찰서 유치장에 수감된 보
은 사람들을 등에 업어 나르며 술로 한세상 어렵게 살 도연맹원 등 공산주의 혐의자들을 모두 처단한 후 철
다간 김영도. 그의 처자식은 계화도 앞바다 물귀신이 수토록 긴급 훈령을 하달했다. 이에 아무 죄도 없는 사
되어버렸다. 삼간평 두주막 거리 규태네 집 작은방에 람들까지 예비 검속시킨 상황에서 옥석을 가려내지
살다가 삼간리 신작로 갓길집 백승찬댁 아랫방을 얻 못하고 죽였다.
어 곤궁하게 살아갔던 친구 가족. 우연의 일치일까. 하 필자의 고향마을 삼간평에서도 애꿎은 사람 때문에
필이면 김영도가 10여년 전(1941년) 계화도 앞바다 이인명씨 장남 이형춘, 장순옥씨 차남 장원호, 궁안마
갯고랑 둔치에 떠밀려온 고래의 마지막 숨통을 칼질 을 김재선(가명)이 수감되었다가 7월 16일 밤 보안면
하여 끊어버렸던 그 장소에서 그의 처 이씨와 아들 형 지와골에 끌려가 수십 명이 집단 총살당했고 상서면
제가 기뢰를 건드려 폭사했으니 운명의 장난이 너무 개암동 골짜기 등 3개소에서 총살형 참상이 벌어졌다.
잔인함을 느끼며 그 분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기도를 7월 20일 14시경 백산 평교에서 인민군 대대 병력이
드리는 바이다. 부안읍을 향하여 양쪽 방향으로 나누어 제 1-2중대는
용계리를 경유 금판리 신운리를 거쳐 읍내 군청으로
진격했고 제 3-4중대 병력은 행중리와 쟁가리 마을을
인민군의 부안 점령 경유해서 부안경찰서로 진입 군청 회의실에서 이날
긴급 치안대책위원회를 발족하여 오후 15시 30분경
북한 인민군 제 6사단 13연대 제1대대장 소좌 강대 군청 옥상에 인민공화국 깃발을 게양 70일간의 인공
준은 행안면 삼간리 570-7호가 본적이다.(현재 박남 통치를 하게 되었다. 이렇게 공산당 세상이 들어오자
근 거주 69세) 강대준의 할아버지가 그 옛날 궁삼간평 변산 속에 은거해왔던 구 빨치산 출신 김창규 신영무,
갯벌 땅 60여만 평을 논으로 개답하여 30여 명 머슴을 노동당 부안군당 조직지도부장 출신 김경준 그리고
두고 천석군 부호로 살았다. 강대준은 T-34형 소련제 행안면 지하조직 차장 장원식 박복환 등 공산당원들
탱크 5대를 앞세우고 밀물처럼 충남 강경을 경유 익산 이 대거 몰려나와 빨강색 완장을 차고 군내 반동분자
웅포, 옥구 서수와 대야를 거쳐 김제 만경 죽산 정읍 색출에 혈안이 되었다.
화호에서 부안 백산 군포다리를 건너는데 1950년 7월
20일 오전 8시에 백산 원천리 제방 둑 밑에 매복해 있
던 경찰과 전투가 벌어졌다. 이황식 순경이 인민군의 행안 사람들의 억울한 죽음
기관총을 맞고 전사했다. 삼발이 오토바이를 타고 선
봉에 나선 강대준 소좌 대대장이 먼저 백산면 소재지 행안면 대초리 출신 오○○, 삼간리 월성마을 출신
평교를 점령하자 지방 공산당 조직원들이 환영했다. 박모와 검암리 최모, 진동리 임모 등이 김석철 면장을
한편 부안경찰서장 한용명 지휘 하에 이날 오전 10시 재내 방죽머리에서 붙잡아 연행 도중 타살했다는 말
에 각 지서 파출소와 본선 내외근 직원 전체 140명을 이 있었다.
긴급 소집하여 3대의 트럭에 분승하여 흥덕으로 철수 붉은 완장을 차고 밀짚모자를 깊이 눌러쓴 장○○은
했다. 그곳에서 아침 식사를 마친 후 고창읍 경유 전남 따발총을 거꾸로 걸머메고 삼간평 앞 뒷동네를 휘젓
장성으로 긴급 철수했다. 고 다녔다. 도로변 담배표집(석유와 쌀 배급소) 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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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2_내 젊음은 행안 삼간평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