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3 - 부안이야기1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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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공화국 시절 행안면 남산리 소재 행안 분주소 야                      려 60여 명 수감자가 혹독한 고문과 구타 폭행으로 피
                   간경비 보조원으로 지명되어 어린나이에 앞뜸 하귀남                       투성이가 되어 신음소리가 마치 물 못자리판 개구리
                   씨와 2인 1조로 남산리 모정에서 밤샘 야경 근무를 했                    합창소리처럼 요란한 생지옥 유치장이었다.

                   다. 그런데 이날은 칠월칠석이라 동네마다 술매기 회                       8월 21일 오후 서너 시경쯤 금장 계급 표식의 인민
                   식하던 풍습에 따라 밤 10시쯤 마을 가게 집에서 개를                    군 장교가 유치장 출입문 앞에 와서 필자 이름을 호명
                   잡아 북한군들이 좋아하는 단고기 막걸리 술 접대를                       한 후에 영창문이 열렸으나 마음은 급한데 일어설 수
                   했다. 야간 경비에 수고하는 군인들과 야경 근무자들                      도 없고 기어서 나갈 힘조차 없었다. “이 간나 씨끼 날

                   까지 모두 초청하여 개고기 삶아 놓고 술잔치 마당을                      래 끌어내라우!” 큰소리가 들렸고 어느 쫄따구 병사가
                   벌였다. 함께 근무하는 하귀남씨와 앳된 얼굴의 소년                      유치장 밖으로 끌어냈는데 같은 마을 이원섭씨가 필
                   인민군 병사가 술집으로 가면서 따발총을 동청 모서                       자를 들쳐 업고 삼간평 본가에 뉘었다. 어른들 이야기
                   리 말뚝에 걸어놓고 잠시 다녀오겠다며 자리를 떴다.                      로는 평소 선친의 침술이 용한데 월암 마을 거주 면당

                   평소 칼빈총과 M1총만 구경하다가 소련제 깽과리 총                      인민위원장 안00씨에게 청탁하여 황소 한 마리와 들
                   이라고 부르던 따발총을 무겁게 손에 쥐고 둥글 넓죽                      논 한 필지 값을 비행기 헌납금으로 분주소장에게 지
                   한 72발의 실탄이 장전되는 탄창과 그 밑부분을 만지                     불한 후에 석방되어 지옥문을 빠져나왔다는 것이다.
                   작거리는데 느닷없이 총구에서 불이 번쩍거림과 동시                        어머니께서 철부지 막내자식 살려내려는 일념으로

                   에 따르륵 소리가 났다. 엉겁결에 연발자동 소총 방아                     큰다리 정미소 함석지붕 공중변소에서 삼베보자기에
                   쇠를 당겼던 모양이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탄피 13개                    인분(똥물)을 걸러내어 쑥으로 콧구멍 틀어막고 질그
                   가 바닥에 튕겨져 나와 있었다. “이크, 큰일났구나!”                    릇 투가리 가득히 인분사발을 마시도록 하셨다. 어혈
                   심장이 두근거리고 공포감에 휩싸였는데 10여 명의                       을 몸 밖으로 빼내기 위하여 20여 일 가까이 마셨다.

                   인민군들이 술 먹다가 뛰쳐나와 우르르 몰려오더니                        짜고 쓰고 떨떠름하고 냄새 고약한 거역스런 인분 투
                   불문곡직하고 주먹과 발길질로 인정사정없이 때려서                        가리 맛을 마셔보지 않은 사람들은 이해가 안 될 것
                   얼마나 두들겨 맞았던지 그만 의식을 잃고 말았다.                       이다.
                     죽어 나자빠져 있는 소년을 죽은 개 끌듯 행안분주                      그 지긋지긋했던 인민공화국 시절, 꺼져가는 죽음의

                   소 유치장에 처넣은 모양이다. 새벽녘에 정신을 차려                      문턱에서 살아나온 부끄러운 과거를 상기하기조차 몸
                   보니 피투성이 얼굴에 두 눈이 부기 팽창으로 저절로                      서리쳐지던 그때 그 시절이 엊그제 같건만 인생역마
                   감겨져 있는데 숨을 쉴 때마다 양쪽 앞가슴 갈비뼈가                      차는 멀리도 갔다. 내 청춘 불살라왔던 내 고향, 꿈길
                   여러 개 부러졌는지 깜짝 놀랄 지경으로 쑤시고 결림                      속에서도 못내 그리움과 아쉬움이 멍울진 이 가슴 속

                   에 숨쉬기가 매우 곤란했다.                                   깊이 각인되어 추억의 소야곡 노래 가사가 문득 떠오
                     이곳 행안분주소 3개 감방 5인실 유치장에는 당시                     른다.
                   부안 경찰서 한용명 서장이 수감되어 있었다. 정읍 수                      어려서부터 말썽꾸러기 짓으로 부모님 애간장 다 태
                   복 탈환 작전 때 한서장이 지휘관으로 참전했는데 인                      워드린 불효한 이 자식, 어머니 유언에 따라 승화원 화

                   민군 탱크부대 박격포 공격으로 경찰 방어선이 무너                       장터 한줌의 재가 되어 동진강 대교 아래 물길 따라 새
                   졌다. 정읍역 철길 장성 갈재 방향 굴다리 밑에서 한서                    만금으로 떠나신 어머니 영전에 두 무릎 꿇으니 부디
                   장이 체포되어 부안으로 압송되어 행안유치장에 소년                       천국에서 편히 영면하옵소서.
                   수감자인 필자와 함께 비좁은 감방 생활을 하였다.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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