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2 - 부안이야기1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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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술함으로써 그의 죄상이 밝혀졌던 것
                                                                         이다. 이 소식을 전해듣자 지하골에서 피
                                                                         살당한 그 유가족들이 수십 명 행안면 분

                                                                         주소 유치장으로 몰려가 그를 분주소 뒷
                                                                         산 공동묘지로 끌고 올라가 수많은 부녀
                                                                         자 유족들이 식칼, 호미, 빨래방망이, 농
                                                                         기구 등으로 그를 때려죽이고 말았다.

                                                                           군청 밖 춘헌 이영일 선생댁 아래채에
                                                                         임시 정치보위부사무실을 운영하여 군
                                                                         경 가족과 지방유지 우익인사들을 가두
                                                                         어놓았다가 인민군이 퇴각할 무렵 백산

                                                                         면 평교 망산 공동묘지 반공호에서 우익
                                                                         인사 수십 명을 대량 학살했다.
                                                                           행안의 월북자들도 여럿이다. 행안면
                                                                         삼간리 월성마을 출신 박예동 박의동 형

                                                                         제는 북한 김일성 정권 초기에 평양에서
                                                                         내각 부장 등 고위직에 있었다고 했다.
                                                                         행안 지석(괸돌)마을 임병권은 북파월북
                                                                         공작 특공대 출신인데 대남간첩으로 잘

                                                                         못 알려지면서 가족들이 억울하게 고생
                                                                         을 했다. 재일교포 북송자인 진동리 임만
                                                                         지는 평양에서 예술인으로 활동했는데
                                                                         반당종파 분자로 몰려 요덕 강제수용소
            한국문인협회 부안지부 앞에서(1997. 11)
                                                                         에 끌려 들어갔다는 말이 있다. 행안 대
                                                                         초리 솔메 마을 출신인 최병주는 해방 후
            질 오랫동안 해먹으며 노동자 농민 고혈 빨아먹었다                       대법관을 했으며 제 2대 국회의원을 했다. 6.25때 북
            고 주인 김학동씨를 폭행하는 광경을 필자는 직접 목                      한으로 납북되었는데 북한에서는 평안북도 삭주군 협

            격했다. 그런데 그렇게도 서슬 퍼렇게 설치고 다녔던                      동농장 연합기업소 법률 자문관으로 재직하다가 그곳
            장씨가 긴급 체포되었다. 그것은 순창 복흥면 소재지                      에서 병사했다는 후문도 들렸다.
            뒷산 공동묘지 상여 집에 숨어 지내던 부안경찰서 양
            기원 전 서장이 체포되어 부안으로 압송 조사 전기고

            문을 받고 실토했기 때문이었다. 장씨가 평소 자기와                      죽음 길을 넘어 어머니 영전에
            사감이 있는 무고한 사람 10여 명을 보도연맹 삐라 살
            포 조직원이라고 명단을 작성하여 양서장에게 제출                          필자는 1950년 8월 20일(음력 칠월 칠석날) 일요일
            예비검속으로 억울하게 총살당하게 만든 밀고자라고                        저녁 큰형님(고태곤, 국립묘지 현충원에 묻힘) 대리로





        032   부안이야기·2018년/겨울/통권제1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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